비기(秘記)가 담긴 두루마리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맡은 ‘무명승’의 이야기를 다룬 액션 환타지 ‘방탄승’. 사진제공 영화방
제2차 세계대전 중 티베트. 이름이 없는 무명승(저우룬파·周潤發)은 스승으로부터 전설의 두루마리를 지키라는 임무를 받는다. 두루마리에는 소리 내어 읽으면 영생불사의 막강 파워를 갖게 되는 비기(秘記)가 담겼다.
나치 SS부대는 이를 빼앗으려 절에 침입하고 무명승은 총에 맞아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60년 뒤 미국에 나타난 무명승은 지하철에서 소매치기 카(숀 윌리엄 스콧)를 만나고 그에게서 두루마리를 지킬 후계자의 자질을 발견한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 ‘방탄승(Bulletproof Monk)’에선 저우룬파가 ‘영웅본색’에서 보여준 로맨틱한 눈웃음을 기대해선 안 될 것 같다. 콘프레이크를 먹으면서도 공격을 척척 받아내는 모습은 얼핏 ‘취권’과도 닮아있다. 하지만, “자넨 정신적 보상은 바라지 않고 물질적 보상만 바라잖아” “자기 자신이 누군지 먼저 물어봐야지” 하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서양인이 기대하는 동양배우의 적당히 신비롭고 희화화된 모습을 벗어나지 않는다. 또 와이어 액션은 미적(美的)이라기 보다 도식적이며, ‘와호장룡’에서 그가 보여줬던 중후한 몸짓은 탈색된 채 약간 버거워 보인다.
도를 깨친 것으로 설정된 무명승이 시종 “진실을 알고 싶지 않아?”하고 서양인을 쫓아다니며 후계자가 돼달라고 조르는 모습에선 측은지심마저 느껴질 수도 있겠다. 유머가 나올 때마다 공식처럼 깔리는 스타카토 음악은 ‘니키타’ ‘레옹’ ‘제5원소’의 철학적 음악을 만든 에릭 세라의 솜씨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단순 코믹하다. 곳곳에 등장하는 유머가 내러티브 속에 녹아들지 못한 탓이다.
연출은 마이클 잭슨, 에미넴 등 인기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만든 CF 출신 폴 헌터 감독이 맡았다. 그는 비록 이야기 전개의 힘은 부족하지만 액션 신을 연속적으로 배열해, 백화점식 볼거리 파상공세를 펼쳐보인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감독의 호흡이 좀더 길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미션 임파서블2’ ‘영웅본색’을 감독한 우위선(吳宇森) 제작. 19일 개봉. 15세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