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군대보다도 더 무서운 무기다. 은행은 순수하게 우리 국민이 소유해야 한다.”
1832년 미국 국책은행인 미합중국은행(Bank of the USA)의 외국인 소유지분이 30%에 이르러 국익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그 허가를 취소하면서 제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당시 미국 은행법에 의하면 외국인은 은행의 이사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주주로서의 투표권마저 행사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잭슨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한 것은 미국이 영국 등 선진국의 금융지배를 얼마나 두려워했는가를 보여준다.
최근 미국계 펀드인 론스타에 외환은행이 매각된 것을 계기로 불거지고 있는 국내자본에 대한 정부의 역차별 논쟁과 관련해 곰곰이 생각해 볼 말이다.
▼세계화로 포장된 경제민족주의 ▼
미국 경제민족주의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는 잭슨 대통령의 초상화가 그려진 20달러짜리 지폐를 비롯해 미 달러화에 실려 있는 유명 정치인들의 초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1달러 지폐에 있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은 취임식 때 질 좋은 영국제 옷을 마다하고 질 나쁜 미국산 옷을 입을 것을 고집했다고 한다. 5달러 지폐에 있는 제16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미국과 같은 후진국의 정부는 관세 보조금 등을 통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유치산업(幼稚産業) 보호론자로 유명했다.
1860년 대통령 선거전에서 링컨 대통령의 공화당은 ‘자유무역은 미국이 아닌 영국에 더 득이 된다’며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민주당을 ‘영국당(British Party)’이라고 비난했다. 남북전쟁 승리 후 링컨 대통령은 공산품에 대한 관세를 미국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올렸고, 그 뒤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100년 가까이 미국의 공산품 관세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10달러 지폐에 나와 있는 알렉산더 해밀턴은 초대 재무장관으로서 사실상 미국 경제시스템을 설계한 사람인데, 그는 우리가 흔히 독일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작품으로 알고 있는 유치산업 보호론의 실제 창안자였다.
50달러 지폐에는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명장인 제18대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이 있다. 그는 영국이 미국에 자유무역을 요구하자 “영국도 17, 18세기에 유럽의 산업 중심지였던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따라잡으려고 보호무역을 했다”며 “우리도 영국처럼 한 200년쯤 보호무역을 통해 산업을 발전시킨 뒤에는 자유무역을 할 것이다”고 반박했다.
100달러 지폐에 있는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최연장자로, 대통령이나 장관을 지낸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미국인의 존경을 받는 정치인이다. 그는 ‘유럽 국가들은 미국에 비해 노동력이 풍부해 임금이 낮다’면서 미국 노동자들에게 고임금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관세를 통해 미국 기업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달러화 지폐에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정치인들이 모두 자국 기업을 보호 또는 보조하고 외국인 투자를 제약하려 한 것은 18, 19세기 당시 유럽의 선진제국에 비해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뒤지고 자본을 수입해야 했던 미국의 입장을 철저히 반영한 것이다.
미국은 2차 대전 후 무역과 투자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는데, 이는 자국이 세계경제의 최강국이 되면서 자유화를 하는 것이 국익에 유리해졌기 때문이지 뒤늦게 자유무역 이론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은 아니다.
▼무리한 개방추진은 위험한 일 ▼
경제민족주의를 통해 성공한 나라는 미국뿐이 아니다. 여타 선진국들도 지금은 후진국들에 자유무역과 외국인 투자 개방을 설교하고 있지만 그들이 후진국이었을 때는 보호무역을 하고 외국인 투자를 규제했다.
지금 한국 정부 일각에는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을 적극 지원하기는커녕 도리어 역차별하면서 그것이 세계화 시대에 우리 국익을 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세계화 논리는 선진국의 경제민족주의를 세계주의로 포장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선진국의 압력 때문에 선택적 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까지는 몰라도 국내기업을 역차별해 가면서까지 무리한 개방을 추진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고려대 교환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