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세상은 빨리 돌아가는데 우리들의 생각은 그를 쫓아가지 못하는 수가 있다. 대부분 늙은이들의 경우가 그렇다. 생각은 저 멀리 앞서 가는데 세상이 도무지 그를 따라와 주지 않는 수도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경우를 겪었을 것이다.
현실과 의식 사이의 이러한 괴리에서 세대간의 간극이 생기기도 하고 정치적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건 다 알고 있는 일이다.
▼‘보수와 진보’ 개념 모호해져 ▼
우리가 잘 모르고 지나치는 것은 비단 ‘현실’과 ‘의식’ 사이에만 괴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세상의 변화에 우리들의 말이 쫓아가지 못하는, ‘현실’과 ‘언어’ 사이의 괴리도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은 늘 변화의 흐름 속에 있는데 현실을 개념화하는 우리들의 언어는 고정적이요 수구적이다.
그 가장 좋은 보기가 바로 ‘혁신’과 ‘보수’ 또는 ‘좌’와 ‘우’라는 개념이다. 오늘날 이처럼 현실과 괴리된 모호한 개념이 또 있을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보혁’ ‘좌우’의 대립 구도는 분명했다. 인권, 자유, 특히 언론의 자유, 민주주의, 3권 분립, 관용, 국제주의와 연대, 자유무역과 영업의 자유…. 그걸 요구하고 주장한다는 것은 혁신이요 좌였다. 오늘날 그것들은 모두 보수와 우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에 반해 독재, 권위와 지도자 숭앙, 검열, 어용 또는 관제 언론, 경제의 국가 통제, 반외세와 민족 지상주의, 국경 폐쇄 등은 과거엔 보수와 우를 식별하는 상징들이었다. 그러나 이것들이 오늘날엔 예외 없이 ‘혁신’을 내세우는 좌의 전유물이 돼버렸다. 21세기의 한반도 지식인 사회의 이념 지도에서는 국경을 폐쇄하고 반세기가 넘도록 어떤 변화와 개혁도 거부하는 북의 세습 독재 체제와 그를 옹호하는 이른바 ‘친북파’가 혁신·좌파로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실존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기에 훨씬 앞서 1970년대부터 현실과 괴리된 ‘진보와 보수’, ‘좌와 우’라는 낡은 개념을 재음미하고 재정의하려는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지금껏 기억에 남은 그 당시의 흥미로운 논의 중에는 다음과 같은 소론도 있었다.
좌익이 무엇이고 우익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새의 두 날개보다 사람의 두 손이 가르쳐 준다. 우는 오른손이요, 곧 일하는 손이다. 물건을 잡을 때, 밭을 맬 때, 밥을 먹을 때, 글을 쓸 때, 또는 주먹이나 무기로 싸울 때 오른손을 쓴다. 오른손엔 활동, 힘, 숙련이 요구된다. 그건 실천적인 손이다.
그에 견준다면 왼손은 활동을 덜하고 힘을 덜 쓰고 숙련이 덜 된 손이다. 그건 일하는 손에 비해 쉬는 손이요, 실천적이라기보다 이론적인(고대 그리스어의 ‘이론’에는 ‘관조’ 곧 ‘본다’는 뜻이 있다) 손이다.
그렇대서 왼손이 필요 없다거나 쓸모가 없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건 다급할 경우 오른손을 대신할 수 있고 대체할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우리는 무언가 마주 들 때엔 언제나 왼손을 필요로 한다.
오른손과 왼손이 하는 일, 그것이 정치에서도 좌파와 우파가 하는 역할이라면 크게 잘못일까? 사실 오른손이 왼손보다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지구상의 대부분 지역에서도 우파는 좌파보다 더 오래 통치하고 있다. 즉 더 많이 일을 하고 있다. 좌파의 본시 고향은 ‘야당’이요, 원래 역할은 ‘반대’하는 데 있다.
그래서 좌도 여당이 되면, 통치를 하려면 어느새 우가 되는 것일까? 가령 북의 김씨네처럼(세계 승공연맹의 최고 간부나 남쪽의 최대 자본가가 어떤 열성적인 주사파보다 북에서 더 환대를 받는 걸 보라) 북에는 일을 않는 손, 야당, 반대파는 용납이 안 된다. 극우의 북에는 어떤 좌의 준동도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쉬는 손에서 일하는 손으로 ▼
남쪽에서 좌파가 정권을 잡는다면? 일을 안 해본, 또는 못 해본 정부가 굼뜰 것은 당연하다. 그건 이해해 줘야 마땅하다. 그 대신 정권을 잡은 좌는 이제 빨리 일하는 우, 다스리는 우가 돼야 한다. 정권을 잡고도 계속 야당처럼 사사건건 반대만 하고 오른손의 실천보다 왼손의 이론 싸움에만 골몰하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
오른손이 하는 짓이 다 좋다는 건 물론 아니다. 정권을 잡았다 해서 오른손으로 (그것도 오른손이 하는 짓이라고) 그저 싸우기만 하고, 그저 먹는 데에만 영일이 없다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