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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인혁당 再審, 역사 바로잡는 자세로

입력 | 2003-09-17 18:28:00


정통성이 취약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체제는 정권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억울한 죽음을 만들어냈다. 8명이 사형집행을 당한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은 유신체제 아래서 저질러진 국가폭력과 사법살인의 대표적인 사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해 9월 인혁당사건 관련자들이 고문에 의해 조작된 자백과 날조된 증거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의문사진상규명위는 사법기관이 아니다. 고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30년 가까이 고통의 세월을 살아온 유족들이 국가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법원이 재심(再審) 신청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사건 재심이 열려야 하는 이유는 비단 관련자들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정보기관이 독재 권력의 사병으로 동원돼 인권을 유린하고 사법부가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참회의 의미가 더 크다. 개발독재 치하에서 어떤 인권유린이 빚어졌는지를 바로 알고 사법부 독립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서도 잘못된 심판은 바로잡아야 마땅하다.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조사 결론에 따르면 당시 중앙정보부는 유신체제에 저항한 민청학련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활동했다는 시나리오를 써 놓고 민청학련의 배후조종 세력으로 인혁당이라는 조직을 날조했다. 이 사건 관련자들의 활동을 매카시즘의 눈으로 보면 ‘좌파’라고 볼 여지는 있었지만 북한의 지령을 받고 인혁당을 결성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법원이 곧 이 사건 재심 여부를 결정하는 심리를 벌일 예정이라고 한다. 대통령 직속 국가기구가 18개월 동안 4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인혁당사건의 수사와 사법절차에서 중대한 결함을 찾아냈다. 확정판결을 충분히 뒤바꿀 만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본다. 사법부가 독재정권 시절에 있었던 잘못된 판결, 오도된 역사를 바로잡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