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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런드 회화 지상展]정물화

입력 | 2003-09-18 17:41:00


《네덜란드 17세기 회화전(11월 9일까지·덕수궁 미술관)의 지상전 시리즈 2번째 편 ‘정물화’를 소개한다. 바로 앞에 놓인 실제 사물처럼 생생한 묘사가 특징인 이 그림들은 여러가지 도덕적 교훈을 상징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당시 신교(칼뱅파)를 신봉했던 네덜란드인들은 이 같은 철학적 회화를 통해 도덕적 위안을 받았다.》

○ 피터 클라스 ‘바니타스 정물’(1630년·목판에 유채·39.5×56cm)

제목 ‘바니타스’(Vanitas)는 인생무상이라는 뜻의 라틴어. 화면에 놓인 담뱃대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 열린 시계, 엎질러진 유리잔, 깃털 등은 모두 ‘일시적인 것’, ‘부질없는 것’을 상징한다. 여기에 압권으로 등장하는 해골과 뼈 역시 가장 강력한 허무의 상징이다.

이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인간에게 남는 것은 죽음일 뿐 이라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누구나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화면을 조용히 어루만지는 것 같은 평온하고 제한된 색채는 철학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북돋운다.

○ 발럼 헤다의 ‘정물’ (1629년·목판에 유채·46×69.2cm)

뚜껑이 열려있는 시계, 엎질러진 유리잔은 인생무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치이지만 이 그림의 핵심 포인트는 침이 나오게 하는, 강렬한 신맛을 자극하는 ’깎다가 만 레몬‘이다. 침이 돌게 하는 그런 인간적 ’감각‘, 즉 ’식욕‘을 느낄 때라도 여기에 현혹되지 말라는 교훈을 오히려 역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또 2차원 평면 위에 펼쳐진 3차원의 환영(幻影)이 주는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유리잔의 투명한 재질과 은 식기 표면의 반짝임을 표현한 화가의 기교 앞에선 탄성이 절로 나온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