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장경 인쇄 종이의 신비를 밝힌 경북 문경 영순초교 장건일 임병호군(왼쪽부터·가운데는 정해철 지도교사) -이권효기자
“‘발효 콩풀’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어요.”
11세기 고려대장경(일명 팔만대장경)을 인쇄한 닥나무 종이 연결부위가 900년 동안 떨어지지 않는 까닭을 초등학생들이 밝혀냈다. 발효 콩풀은 청국장을 만드는 것처럼 삶은 콩을 발효시켜 으깨 만든 풀로 고려대장경을 인쇄한 한지에 사용됐다.
경북 문경시 영순면 영순초교(교장 신금식·申金湜) 6학년 장건일(張建一·12) 임병호(林炳浩·12)군은 8개월의 연구 끝에 발효 콩풀의 고초균(枯草菌)이 곰팡이와 벌레를 막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이 학교는 전교생이 60명에 불과한 산골학교.
장군 등은 이 같은 연구 결과를 과학기술부가 주최한 제49회 전국과학전람회에 출품, 다음달 17일 화학분야 학생부 최우수상을 받는다.
“작년 12월 텔레비전을 보다가 고려대장경을 찍은 한지에 발효 콩풀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발효 콩풀을 쓰면 왜 오랫동안 종이가 떨어지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어요.”
장군 등은 이 학교 정해철(丁海喆·37) 교사와 함께 서울 중구 태평로에 있는 성암고서박물관을 찾아 대장경 인쇄본인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을 직접 관찰한 뒤 연구를 시작했다.
길이 10m가량인 유가사지론은 가로 45cm 세로 30cm가량인 한지를 두루마리로 이어 대장경을 인쇄한 것. 이들은 종이를 이은 부분에 사용한 발효 콩풀은 색깔 냄새 촉감이 좋지 않고 물에 약하지만 온도변화에 매우 강하고 개미가 싫어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특히 발효 콩풀 속의 고초균은 항생물질을 만들어 곰팡이를 방지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장군 등은 “개미가 왜 발효 콩풀을 싫어하는지 알고 싶어 여름방학 내내 개미를 잡아 실험하느라 힘들었지만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어 기쁘다”며 “조상들이 오래전에 발효 콩풀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이 놀랍고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정 교사는 “아이들이 전통 풀을 단서로 끈질기게 연구를 했다”며 “발효 콩풀은 냄새와 색깔을 보완하면 지금도 문화재 복원에 사용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문경=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