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인 영화감독의 리더십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고 한다. 특유의 예술혼과 명성으로 현장을 장악하는 ‘카리스마형’, 지성과 매너로 호감을 이끌어 내는 ‘선비형’, 위압적 몸놀림과 욕설로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하는 ‘조폭형’,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자신의 연출 의도를 관철해 내는 ‘완벽추구형’, 재치와 유머로 현장을 즐겁게 하는 ‘개그맨형’, 잘되면 내 덕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제작자나 언론 탓이라는 ‘네탓이오형’에, 여배우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 ‘카사노바형’까지.
▷한국리더십센터가 네티즌 5000여명을 대상으로 ‘우리 시대 신뢰받는 리더’를 조사한 결과 문화예술 분야에서 임권택 감독이 차점자를 1000표가량 따돌리며 압도적인 1등을 차지했다. 대결과 반목이 유독 심한 한국 문화예술계에서 그는 젊은층과 기성층, 진보와 보수, 작가주의와 상업주의에 상관없이 신뢰와 존경을 받는 거의 유일한 영화인이다. 중학교 3년 중퇴의 학력이지만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뒤 가톨릭대에서 명예 문학박사학위를 받고 예술원 회원도 됐다.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운 타이틀은 현재 99번째 작품 ‘하류인생’을 찍고 있는 동년배의 유일한 ‘현역 감독’이라는 점일 것이다.
▷‘임권택 리더십’의 요체는 무엇일까. 영화계에서 그는 신의를 존중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1984년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과 ‘비구니’로 처음 인연을 맺은 이래 ‘아제아제 바라아제’ ‘장군의 아들 1, 2, 3’ ‘서편제’ ‘태백산맥’ ‘축제’ ‘창(娼)’ ‘춘향뎐’ ‘취화선’ 등 10편을 내리 한 영화사와만 찍었다. “임 감독과 한번 일해 보는 게 소원”이라며 거액을 제시하는 제작자와 영화사가 적지 않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장군의 아들’의 박상민, ‘서편제’의 오정해, ‘태백산맥’의 김갑수, ‘춘향뎐’의 조승우처럼 무명배우들을 주로 발굴해 쓴다.
▷남다른 독서가이기도 한 그는 필름을 가장 아껴 쓰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콤비인 정일성 촬영감독과 사전 리허설을 충분히 해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한두 번에 OK 사인을 낸다. 오래전 호남지방에서 밤늦게 촬영을 마친 임 감독이 배우, 스태프를 이끌고 새벽녘에 서울에 도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힘들고 귀찮더라도 내가 이렇게 하면 영화사는 제작비 수천만원을 건진다”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촬영장에서는 배우, 스태프와 똑같이 먹고 잔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자리에 있는 많은 이들이 임 감독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하기 바란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