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평양을 전격 방문한 지 1년이 됐다. 방문 직전 “연내 수교도 꿈만은 아니다”라고 일본 정부 고위 관료가 호기롭게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일본인 납치 문제로 북-일 관계가, 핵 문제로 북-미 관계가 틀어졌다.
북한이 벼랑 끝 외교를 펼치다 중국 베이징 6자회담이 열리면서 마침내 북한과 대화채널이 가동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북한의 언동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북한은 일본 국민을 납치한 일을 인정하고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숨졌다고 밝힌 이들에 대한 조사는 엉터리고 설명도 제멋대로다. 이런 말로 일본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정말로 믿는 것일까.
작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농축우라늄형 핵무기 개발 의혹을 제기하자 북한은 이를 인정했다. 더욱이 북한은 6자회담 석상에서 “우리는 핵 억제력과 운반수단을 직접 보여줄 용의가 있다”고 기세를 올렸다. 핵 실험도, 미사일 실험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이래도 해 볼 테냐’는 도발이다. 왜일까.
북한은 결국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핵도 이를 위한 미끼라고 단정하는 이도 있다. 이 경우 흥정을 잘해서 핵 체제를 유명무실하게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북한이 핵 보유를 북한의 생존 및 안전 보장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면 북한을 다자회담의 틀에 끌어들인다 해도 핵 폐기를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은 핵을 억지력으로서 보유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 것 같다.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과 강력한 관계를 맺도록 강요하는 힘으로서 핵의 효용을 시험해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핵 실험을 해서 핵 보유 선언을 당당하게 하는 편이 그런 효용을 높여줄지 모른다. 어쩌면 그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사처럼 죄어 오는 북한의 핵 위협 앞에 북-일 정상회담의 핵심이었던 북-일 수교협상은 당초 의미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차라리 북한 체제를 변혁시키는 것이 핵 폐기를 위해 더욱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북-일 수교는 여전히 전략적 의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앞으로 10년, 15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동북아 평화와 안정 구상의 축 가운데 하나로 판단돼야 한다.
전략적 의의란 △한반도 비핵화 유지와 군비축소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다자간 틀 형성 △일본이 위 두 가지를 진행하는 과정에 필요한 안정과 완화작용을 하는 것이다.
북-일 관계 정상화는 위 세 가지를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동시에 미일 동맹, 한미일 협조의 유지와 강화, 나아가 북한 문제에 관한 중일간 정책 대화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앞으로 북-일 수교는 양국의 독자 논리뿐 아니라, 6자회담을 비롯한 다자간 틀의 논리도 보다 민감하게 반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인 납치 문제는 인권문제라는 보편적 성격도 띠고 있다. 따라서 인권보장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의 중요한 이념이자 정신으로 뿌리내려져야 한다.
6자회담의 수확 가운데 하나는 켈리 차관보가 북-미회담 내용을 6자회담 석상에서 그대로 밝힌 것이었다. 북한 언동의 투명성과 설명 책임을 확실히 하면서 서서히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6자회담의 함정도 있지 않을까. 국제무대인 만큼 김 국방위원장이 ‘과잉 연기’를 할 위험성도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이 극장형의 국제 테러리스트 정치를 연출했다면 김 국방위원장은 극장형의 국제 대량파괴무기 정치를 계속하리라는 시각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독재 체제에서는 종종 정치 지도자의 공포심, 자존심, 질투, 허영심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편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가끔 대중의 집단심리를 제어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우연이라고 하는 요소도 작용하기에 그리스 비극을 보는 것처럼 두려운 느낌이 든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