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초 현대비자금 200억원과 150억원을 각각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과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전달한 김영완(金榮浣·미국 체류중)씨가 당시 돈 전달 과정 등을 상세하게 진술한 자술서가 18일 공개됐다.
김씨가 지난달 29일 변호인을 통해 검찰에 제출한 A4용지 12장 분량의 자술서에는 김씨와 권씨, 고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 이익치(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 사이의 관계도 나타나 있다.
김씨는 자술서에서 “2000년 2∼3월경 ‘200억원이 준비되면 이익치 회장이 연락할 테니 받아서 권씨에게 주라’는 정 회장의 지시를 받고 며칠 후 이익치 회장으로부터 ‘돈이 준비됐으니 서울 압구정동 H아파트 뒷길로 오라’는 전화가 걸려왔다”고 진술했다.
자술서에 따르면 당시 이씨는 ‘큰 차’를 가져올 것을 주문한 뒤 김씨가 농담 삼아 “내 차(에쿠스)도 크다”고 하자 이씨는 봉고차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김씨는 한 상자에 2억원씩 들어있는 돈 상자를 3, 4차례에 걸쳐 총 200억원을 봉고차에 실어 가져왔다.
그 후 김씨는 ‘50개만 달라’는 권씨의 전화를 받고 돈 상자 25개(50억원)를 직접 차고 안쪽까지 옮겨 놓은 뒤 권씨가 보낸 사람에게 전달했으며 규모가 작은 수억원은 몇 차례 나눠 권씨 집에 자신이 직접 배달했다. 이런 식으로 총선 직전인 4월 11일까지 권씨 집에 배달된 돈은 총 150억원. 나머지 50억원은 무기명 국민채권으로 바꿔 국내 지인에게 맡겨 보관 중이라고 김씨는 밝혔다.
또 김씨는 권씨와의 인연에 대해 “1990년경 권씨가 국회의원으로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할 당시 증인 채택 문제로 처음 만났으며 권씨의 부인이 내가 어린시절 살았던 동네에 있던 출판사 집 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친하게 지냈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89년경 방위산업에 참여하려던 정 회장을 당시 청와대 국방비서관 S장군을 통해 알게 됐고 이때 이익치 회장도 함께 소개받았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 수사기록에는 99년부터 2년간 김씨의 수입이 이자소득 4억2000만원, 배당소득 40억400만원, 부동산 소득 4억5600만원, 근로소득 5억2900만원 등 총 58억9400만원이라고 돼 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