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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수화에 대한 편견과 모독 깨기

입력 | 2003-09-19 18:00:00


◇우리들의 말을 빼앗지 마세요!:농아(聾兒)들의 인권선언

(ぼくたちの言葉を奪わないで:ろう兒の人權宣言)/아카시(明石)서점/ 2003년

수화는 언어다. 당연한 이야기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수화는 언어다’라는 인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들은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을까.

언어학 연구가 진보함에 따라 수화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 등과 똑같이 자립적인 자연언어로 인정되고 있다. 다른 모든 언어와 마찬가지로 수화는 독자적 문법 구조와 어휘를 갖춘 독립된 훌륭한 ‘언어’다. 그렇다고 세계 공통의 수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는 한국 수화가 있고 일본에는 일본 수화라는, 각 사회 고유의 수화가 있다. 물론 한국어나 일본어의 음성언어를 옮긴 수화도 있는데, 그것을 ‘SIMCOM(Simultaneous Communication)’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농자(聾者)’들의 모어는 아니고 단지 청각이 건강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인공적으로 만든 말일 뿐이다.

이런 점들이 인식되면서 ‘농아자(聾啞者)’라는 명칭이 적절치 않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농아의 ‘아(啞)’란 ‘말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인데, 농아자는 훌륭하게 수화라는 언어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일본에서는 ‘농자’라는 표현이 더 일반화됐다. ‘농자’란 수화를 모어로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놀랍게도 ‘농학교’에서는 수화가 금지돼 있다. 수화는 음성언어의 견지에서 봤을 때 열등하고 불완전한 언어라는 편견을, 농학교 교사들도 뿌리깊이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억지로 아동들에게 음성을 내게 한다거나 상대방의 입움직임을 읽는 독순(讀脣)을 가르치기는 해도 학생들의 모어인 수화는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이처럼 자신들의 모어인 수화를 학교에서 금하는 것은 어린이들의 인권 침해다.

일본의 ‘전국 농아를 가진 부모들의 모임’은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2002년 1월 ‘농아들의 인권선언’을 발표했다. 2003년 봄에는 일본변호사연합회에 ‘농아들의 인권구제신청’을 했고 연합회는 이를 수리했다. 그 신청이란 “농학교에서 일본 수화로 수업을 받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농아들에게 일본어의 문자언어와 수화에 의한 이중언어 교육을 받게 해 달라는 것.

혹자는 이것을 단지 수업 방법에 관한 문제로 치환해 버릴지 모르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이 문제야말로 사회에서의 ‘농자’라는 소수자의 정체성 및 인권 보장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화를 금지하고 ‘농자’에게 억지로 음성언어를 습득시키려는 것은 소수자의 언어를 박탈하고 다수자의 언어에 동화시키려는 식민지주의적 폭력과 유사하다.

이 책을 통해 ‘농자’란 치료해야 할 장애인도 아니며 ‘소리를 못 듣는 불쌍한 사람들’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청각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들 식대로의 감정이입으로 ‘농자’를 ‘불쌍하다’는 시선으로만 바라본다. 그러나 ‘불쌍하다’는 감정은 사실상 자기들이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따라서 그것은 거만의 징표일 수도 있다. ‘농아들의 인권선언’은 이런 건청자들의 아전인수격 선의와 오만함을 뒤엎고 진정으로 평등한 입장에서 ‘농자’들과의 상호 이해가 중요함을 일깨워 준다.

이연숙 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