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침팬지 연구가 인간이해를 돕듯 첨단 시장 자본주의의 기원을 밝히려면 그 전 단계를 추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왼쪽은 성공한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 뉴욕의 마천루, 오른쪽은 페루 남부의 도시 쿠스코의 재래 장터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자본의 미스터리/에르난도 데소토 지음 윤영호 옮김/272쪽 1만4000원 세종서적
“인간을 이해하면 원숭이를 이해할 수 있다”란 말이 있다. 그 역은 어떤가. 즉, 원숭이를 이해하면 인간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고고학자나 침팬지연구자 등 인류 태초의 모습을 찾아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은 분명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수행한 작업은 고도로 발전한 현대 시장자본주의의 전(前)단계를 추적함으로써 선진국 사람들이 오늘날 누리고 있는 번영과 풍요의 기원을 밝힌 일이다. 경제에 관한 하나의 고고학, ‘경제고고학’이라 부를 만한 특이한 성격의 저서다.
강 하류에 위치한 비옥하고 풍요로운 삼각주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번영의 원천인 강 상류를 탐험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제3세계나 구(舊)사회주의권이 서구에 도움을 요청할 때 돌아오는 답은 비옥한 삼각주(서구자본주의)의 생활방식을 모방하라는 것이 전부였다. 구체적으로 통화안정, 시장개방 등 이른바 거시경제와 구조조정을 통한 개혁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하면 단기적으로는 상황이 좋아지는 듯하지만 결국은 고(高)인플레와 침체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과거 빈곤의 악순환, 저발전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주로 양적인 측면 특히 저축, 투자의 결핍에 집중됐다. 저자가 보기에는 빈민들 사이에도 잘 보면 방대한 자산이 축적돼 있다. 문제는 이 자산을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자본’으로 전환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이 결핍돼 있다는 것이다. 빈곤국에서는 예외 없이 법적 규제가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들어 대부분의 자산이 불법적 형태로 보유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저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페루에서 국유지에 집을 짓는 건축허가를 얻으려면 6년11개월 동안 52개 관공서를 드나들며 207개 항목에 이르는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불법적 자산은 담보나 매매가 어렵고, 다양한 형태의 임차도 안 된다. 따라서 고원에 있는 호수물이 높은 위치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 수력발전기를 설치하기 전까지는 전기를 발생시키는 실제 힘으로 전환될 수 없듯이 이 방대한 자산은 경제성 있는 ‘자본’으로 전환되지 못한다.
통일된 재산권 체제에 의해 보장되는 합법적 재산은 소유주 보호라는 소극적 역할을 넘어 다양한 거래를 촉진해 자산의 활용도를 높이고 자산이 사람들 사이에서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해준다. 요즈음 용어로 거래비용을 절감하면서 자산 간의 협동을 통해 부(富)를 극대화한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의 원천이 분업에 있다고 했다. 분업의 심화는 다양한 자산이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결합하거나 해체되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달성된다. 저자의 결론은 자본주의 번영의 기초가 다름 아닌 잘 정비된 (사유)재산권 제도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선진국도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초기 단계에는 예외 없이 재산권의 혼란이 있었다. 정치적 과정을 통해 모두가 동의하는 (일종의 사회계약에 의한) 근대적 재산권제도를 확립함으로써 급속한 발전의 기초가 마련됐다고 본다.
저자가 경제의 고고학을 통해 밝히고 있는 자본주의의 기원과 기초는, 실은 필자가 ‘자본주의 제도론’이라는 전문적 논문을 통해 논리적으로 증명한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자본주의의 전 단계에 머물며 지금도 세계자본주의의 밑바닥을 헤매고 있는 70∼80%의 후진국 발전문제,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국의 체제전환 문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이다. 시장개방을 통한 성장전략은 더욱더 합법적·공식적 영역과 비합법적·비공식적 영역간의 양극화를 부채질할 뿐 이들 국가가 겪고 있는 혼란을 종식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다.
조원희 국민대 교수·경제학 chowh@kookmi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