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수기자
올해 7월 1일 체코 프라하의 힐튼호텔 컨벤션 센터.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제115차 총회의 전야제를 겸해 열린 리셉션장에 들어선 강원 출신 한나라당 김용학(金龍學) 의원은 한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았다. 마침 앞에 서있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온 듯한 IOC위원 2명에게 김 의원은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을 붙였다.
“저… 나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입니다. 어디서 오셨는지….”
아프리카 위원은 뭐라고 자기 나라 이름을 댔지만 김 의원은 잘 알아듣지 못했다. 다시 김 의원이 “평창을 아느냐”고 질문하자, 그 위원은 “들어봤다. 그런데 시설이 좀 부족하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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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이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설명을 하려 했으나 영어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다른 나라 대표단으로 보이는 한 백인이 대화를 자르고 들어왔다.
‘잘츠부르크’ 운운하는 걸로 봐서 유치 경쟁국인 오스트리아 대표단으로 짐작됐다. IOC위원은 유창한 영어의 이 오스트리아 유치단 관계자와 곧 대화에 빠져들었다.
“1분1초가 아까운 이 합법적 로비공간을 앞에 두고 얼마나 준비가 부족했던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무거웠습니다. 비행기에 오를 때 ‘힘내라’고 환송해 준 지역구민들의 얼굴이 스치더군요. 내 자신의 한심한 모습에 너무 화가 났습니다.”
19일 서울 여의도관광호텔에서 2시간30분간 인터뷰한 김 의원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국내에서만 큰소리치며 지낸 자신을 반성하며 부끄러운 고백을 털어놓았다.
“물 반 고기 반(IOC위원)인 황금어장을 눈앞에 두고도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부끄러워 호텔 숙소로 돌아가려고 유치단 버스에 올랐어요. 그런데 한 동료의원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며 저녁약속을 하고 있더군요. 유치현장에는 관심도 없고 개인적인 식사 약속이나 챙기며 ‘딴 짓’하고 있는 모습에 왈칵 배신감이 들었어요.”
“숙소 근처에 술집이라도 있으면 답답한 속을 달래보련만 시내에 이렇다 할 술집도 없고…. 무기력한 자신을 참 많이 원망했습니다. 이 때문에 공식 행사 이외에는 호텔 로비를 서성이며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거나 동료의원 또는 유치단 관계자들과 차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지요.”
그는 IOC위원들과의 접촉을 가급적 피하고 싶었던 자신을 돌아보면서 선배 의원들이 외국에 나가면 외교는 뒷전이고 관광지나 골프장을 빙빙 돌다가 들어오곤 하는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말이 의원 외교지 사실상 ‘외유(外遊)’라는 얘기였다.
이에 앞서 올 2월 IOC 실사단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그는 평창의 지역구 의원으로서 꼭 참석해달라는 자리가 3, 4차례나 있었지만 국회 일정을 이유로 한 차례만 참석했다.
“내가 뭐 할일이 있겠느냐는 생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만나 설명을 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김 의원은 이때 실사단으로 방한했던 인사 중에 IOC의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프라하에 온 뒤에야 알고는 땅을 쳤다.
“국익을 위해서는 물론 지역구를 위해서도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내 자신은 지금까지 ‘반쪽짜리’ 국내용 국회의원에 불과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김용학 의원은…▼
군 법무관 출신의 초선의원(47세).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군법무관으로 임관해 육군중령으로 예편했다. 1992년부터 고향인 강원 영월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0년 4·13총선에 출마해 금배지를 달았다.
지난해 말부터 6개월간 서청원(徐淸源)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지난해 12월부터는 국회에서 2010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아 고향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