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교수가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을 분비하는 이자의 모형을 보여주며 증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박영대기자 sannae@donga.com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 내과 손호영 교수(55)의 연구실 벽에는 흑백 영정(影幀)이 하나 걸려 있다.
손 교수에게 아버지나 다름없는 고 민병석 박사의 사진이다. 민 박사는 1970∼80년대 인품과 학식으로 유명한 내과 명의였다. 손 교수는 본과 2학년 때 민 박사의 강의를 듣고 내과로 가기로 결심했으며 민 박사는 손 교수가 석사 과정에 들어가자 다른 교수의 지도를 받던 손 교수를 ‘빼앗아 와’ 제자로 삼았다.
1983년 봄 민 박사는 내과에서 내분비내과를 독립시키고 손 교수를 수제자로 삼아 환자를 봤다. 그러나 그해 말부터 내분비내과 진료실에서 민 박사를 볼 수 없게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민 박사가 아웅산 폭탄 테러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황무지에 버려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당시 김응진 민헌기 최영길 허갑범 교수 등 원로 교수들이 큰 힘이 됐습니다. 그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들이 빨리 커야 하는 법’이라며 제게 온갖 도움을 줬습니다.”
손 교수는 원로 교수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당뇨병과 내분비 대사 질환, 이자 섬세포 이식 분야의 세계적 학자로 성장했다. 그는 2006년 세계당뇨인대회의 서울 유치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 행사는 의료인 1만여명 등 3만명이 참가하고 1000억원 이상의 외화 수입을 거둘 수 있다.
그는 최근 민 박사의 별세 20주기를 맞아 추모 심포지엄을 개최하느라 바쁘다. 이 심포지엄에는 스승의 아들로 서울 목동에서 류머티즘 전문병원을 개원하고 있는 민도준 박사도 주제 발표 시간을 갖는다.
―주위에서 당뇨병 환자를 쉽게 볼 수 있다. 환자가 어느 정도인가.
“1970년대에만 하더라도 당뇨병 환자는 인구의 1% 미만이었지만 식생활의 서구화와 승용차 보급으로 인한 운동부족 등 때문에 비만 인구가 늘면서 급증하고 있다. 현재 인구의 12%를 넘어섰다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다. 당뇨병은 뇌중풍, 심근경색, 만성 신장염 등 합병증이 무섭다. 당뇨병 때문에 발이 썩어 잘라야 하는 사람이 교통사고로 발과 다리를 절단하는 사람보다 많다. 당뇨병은 합병증을 다 합치면 국내 사망률 1위의 질환이다.”
―자신이 당뇨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는데….
“그렇다. 세계적으로 당뇨병 환자로 진단받은 사람은 1억5000만명인데 세계보건기구 등에서는 환자가 이의 갑절인 3억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인 중에서도 자신이 당뇨병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뇌중풍, 심근경색 등 합병증이 갑자기 와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많다. 당뇨병은 조기 발견해 일찍 치료하면 삶의 질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 당뇨병에는 예방에도 3단계가 있다. 첫째는 병이 아예 안 생기도록 근원적으로 예방하는 것이다. 비만, 대사증후군, 고혈압 등의 환자는 식사요법과 운동으로 체중과 혈압 등을 조절해야 한다. 2차 예방은 조기에 발견해 합병증이 안 생기도록 하는 것이다. 3차 예방은 합병증이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1차 예방을 가장 등한시하는 듯하다.”
―당뇨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방법은….
“많은 사람이 다뇨(多尿), 다음(多飮), 다식(多食)의 삼다(三多) 현상을 당뇨병의 대표 증세로 알고 있고 이런 증세가 없으면 별로 걱정을 안 한다. 이 때문에 아무런 증세 없이 병이 상당히 진행된 뒤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당뇨병을 조기에 알려면 혈액 검사를 받아야 한다. 국제 기준에는 40세 이상이면 정기적으로 혈당 검사를 받으라고 권하지만 한국에는 젊은 당뇨병 환자가 많아 30대 이후에 정기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병을 초기에 찾아 일찍 치료하지 않으면 10년, 20년 뒤 치명적 결과가 올 수 있다.”
―당뇨병은 어떻게 치료하나.
“치료법은 병의 종류와 환자 상태에 따라 다르다. 당뇨병은 크게 1형과 2형으로 구분된다. 1형은 이자의 섬세포가 70% 이상 파괴돼 인슐린이 거의 나오지 않는 것. 2형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세포의 기능이 떨어져 인슐린이 잘 안 나오는 ‘분비 장애’와 인슐린은 분비되지만 인슐린의 기능이 떨어지는 ‘인슐린 저항성 증후군’이 있다. 한국인은 2형이 99% 이상인다. 일반적으로 마른 사람들은 인슐린 분비세포의 기능이 떨어진 경우가 많고 비만인 환자는 인슐린의 기능이 떨어진 경우가 많다. 1형은 인슐린을 주사 또는 인슐린 펌프로 강제로 넣어줘야 한다. 2형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운동, 식사요법, 약물요법 등을 적절히 병행해 치료한다.”
―2형의 치료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운동은 예방 및 치료 모두에 도움이 된다. 오랫동안 운동을 멀리한 사람은 당장 걷기부터 시작하기를 권한다. 식사요법은 탄수화물 60%, 단백질 20%, 지방 20%의 비율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설탕과 동물성 지방은 금물이라고 하는데 이 비율을 넘을 정도로 과하지 않으면 괜찮다. 커피에 넣는 설탕 한 스푼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기를 바란다. 약물요법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인슐린의 기능을 강화하는 약, 이자 섬세포의 기능을 강화하는 약 등을 선택한다.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획기적인 치료법은 없다.”
손 교수는 “한국인은 아파야 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아프지 않아도 몸이 변하고 있으면 병”이라면서 정기검진으로 병을 조기에 찾고, 혈당이 높다면 증세가 없어도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어떻게 뽑았나 ▼
서울대병원 박경수, 강남성모병원 손호영, 서울아산병원 이기업, 세브란스병원 이현철 교수와 허내과 허갑범 원장(가나다 순)이 당뇨병 분야 베스트 닥터로 공동 선정됐다.
이는 전국 15개 대학병원의 내분비 내과 교수 46명에게 △자신의 가족에게 당뇨병이 있을 때 진료를 부탁하고 싶고 △최근 3년 동안 진료 및 연구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의사를 5명씩 추천받아 집계한 결과다. 이들 5명은 거의 똑같은 점수를 받아 집계 방법에 따라 1∼5위가 약간씩 바뀌었다. 삼성서울병원 김광원 교수와 서울대병원 이홍규 교수도 이들에 버금가는 추천을 받아 사실상 7명을 공동 1위로 선정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서울대병원 박경수 교수는 “국내 당뇨병 치료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며 “따라서 당뇨병 환자는 명의를 고집하지 말고 자신을 가장 꼼꼼히 치료해줄 수 있는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뇨병 치료 명의들◇
▼당뇨 조기진단법 연구 ▼
▽박경수(44)=미국 UC 샌디에이고에서 2년 동안 당뇨병과 인슐린 저항성의 분자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대해 연구했다. 보건복지부 지정 ‘당뇨 및 내분비질환 유전체연구 센터’의 센터장을 맡아 한국인 당뇨병의 유전적 특징을 규명해 조기 진단법, 예방법, 맞춤 치료법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당뇨병’지 등 국제 학술지에 3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비만치료제 개발 몰두 ▼
▽이기업(48)=처음에 무뚝뚝한 인상에 다소 당황할 때가 있지만 진료비 부담까지 고려하는 세심한 진료에 감탄한다. 과학기술부로부터 18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국가지정 연구실인 ‘대사질환연구실’를 운영하고 있다. 비만의 합병증으로 생기는 당뇨병의 예방 및 치료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외국의 권위지에 3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인 당뇨유전자 규명 ▼
▽이현철(56)=1996년 한국인에게서 생기는 제1형 당뇨병의 유전적인 특성을, 이듬해에는 한국인 당뇨병 환자의 유전자 돌연변이 과정을 규명해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2000년에는 세계 최초로 인슐린 유사체를 이용한 독자적인 당뇨병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해 동물실험에서 완치에 성공했다. 이러한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2001년 인촌상을 받았다.
▼DJ주치의-당뇨병학회장 맡아 ▼
▽허갑범(66)=김대중 전 대통령 주치의, 연세대 의대 학장과 당뇨병학회, 지질학회, 내분비학회 회장을 지냈고 한국성인병예방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의대 제자들이 뽑은 올해의 교수상, 연세의료원 환자들이 뽑은 친절 의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에는 외국 분류에 따른 1형과 2형의 중간인 1.5형 당뇨병 환자가 많다는 것을 밝히는 등 괄목할 만한 연구결과를 꾸준히 발표했다.
▼現 당뇨병학회 이사장 ▼
▽김광원(56)=현재 대한당뇨병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환자들의 생활습관을 개선하기 위해 일주일간의 입원, 산행, 당뇨식사 뷔페를 통한 식사교육, 여름 당뇨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 환자의 가족력, 치료형태, 질병상태, 합병증을 전산화해 가장 합리적인 치료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한국인 당뇨병의 유전형과 이에 따른 치료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세계최고 인슐린 펌프 개발 ▼
▽이홍규(59)=1993년 국내 최초로 대규모 당뇨병 역학 연구를 실시했다. 97년 세포 내의 미토콘드리아 밀도가 낮을수록 당뇨병 등 성인병에 잘 걸린다는 사실을 세계 처음으로 밝혀냈고 제2형 당뇨병의 미토콘드리아 가설을 제창했다. 이 내용은 조만간 미국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될 예정. 98년 건국대 최수봉 교수와 함께 세계 최고 성능의 인슐린 펌프를 개발했다.
▼소아 청소년 당뇨캠프 운영 ▼
▽최동섭(52)=당뇨병 고위험군에 대한 1차 예방법, 대사증후군 등에 대한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9개 대학병원이 참여한 당뇨병 만성 합병증에 대한 역학 연구의 책임 연구자이기도 하다. 18년 동안 소아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당뇨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대한당뇨병학회 교육위원장을 맡아 전국의 내과 개원 의사를 상대로 매주 강의를 하고 있다.
▼노인 당뇨병 국제학술지에 보고 ▼
▽백세현(44)=1999년부터 무료 건강 검진사업을 하면서 60세 이상 노인의 당뇨병 등 성인병 유병률, 사망원인 등을 조사해 이를 ‘서울 서남부 지역 연구’라는 이름으로 국제 학술지에 보고하고 있다. 진료, 상담, 환자 교육 등이 한꺼번에 이뤄지는 ‘원 스톱 당뇨클리닉’을 운영하고 청년 당뇨병 환자 모임을 결성하는 등 환자의 권익을 위해 애쓰고 있다.
▼당뇨-노인의학-창상치료 권위자 ▼
▽유형준(50)=당뇨병 치료뿐 아니라 노인 의학, 창상 치료 등에서도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노인 당뇨병 환자에게서 생기는 혈관합병증의 핵심인 동맥경화의 발병에 중요한 혈관 평활근 세포의 칼슘채널 역할을 규명해 세계동맥경화학회지에 발표하는 등 꾸준한 연구 성과를 보이고 있다. 환자의 사회 심리적 상태 개선까지 염두에 두는 통합적 당뇨병 교육 치료팀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첫 자가면역 항체 측정 ▼
▽이병두(47)=1985년 국내 최초로 당뇨병 환자의 자가면역 항체를 측정했고 94년 당뇨병 환자의 등록사업을 실시했다. 한국인의 당뇨병을 예방하기 위한 체계적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병원 내의 심혈관 센터와 협력해 당뇨병 환자 조기 사망의 원인이 되는 심혈관 질환의 예방에 주력하고 있다. 개원의와 환자들 대상의 명강의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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