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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 안대회교수 19세기 담배전문서 '연경' 발굴 소개

입력 | 2003-09-21 17:41:00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김득신의 '야묘도추도'.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들고양이를 놀란 주인이 담뱃대로 내치는 모습을 묘사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시구(詩句)를 생각하느라 수염을 비비 꼬고 붓을 물어뜯을 때, 특별히 한 대 피우면 연기를 따라 시가 절로 나온다.’

한평생 소품문 창작에 전념한 19세기 문인 이옥(李鈺)이 담배 전문서 ‘연경(烟經)’에 소개한 담배의 효용 중 하나다.

최근 영남대 안대회 교수(한문교육학과)가 국학 계간지 ‘문헌과 해석’ 가을호에 ‘연경’ 발굴 사실과 함께 그 내용을 풀어 공개했다. 1책 25장 분량의 ‘연경’은 저자의 친필본으로 올 초 한문학 연구자 김영진씨(고려대 박사과정)가 영남대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연경’은 조선의 담배 경작법, 담배의 원산지와 전래 경로, 담배를 쌓고 자르는 법, 담배와 관련된 도구, 담배 문화 등을 서술했다.

담배처럼 소소한 소재를 경전의 경지로 끌어올린 점에서 정약용이 닭치는 큰아들에게 계경(鷄經) 편찬을 권하며 말했다던 “속된 일을 하면서도 맑은 운치를 지닌” 대표적 사례다.

담배를 통해 조선 후기 시정 생활도 생생히 그려진다.

‘대궐의 섬돌 앞에서 임금님을 모시고 있는데 엄숙하고 위엄이 있다. 입을 닫은 채 오래 있다 보니 입맛이 다 떨떠름하다. 대궐문을 벗어나자마자 급히 담뱃갑을 찾아 서둘러 한 대 피우면 오장육부가 모두 향기롭다.’(담배가 맛있을 때·연미·烟味)

‘어린 아이가 한 길 되는 담뱃대를 입에 문 채 서서 피우다가 또 가끔씩 이빨 사이로 침을 뱉는다. 가증스러운 놈!’(담배 피우는 것이 미울 때·연오·烟惡)

‘대중이 모인 곳에서 혼자 피우는 것은 안 된다. 매화 앞에서도 안 된다. 몹시 덥고 가물 때도 안 된다.’(흡연을 금하는 것·연기·烟忌)

흡연의 멋(연취·烟趣)에서는 담배의 다섯 가지 격(格)을 소개하는데 이 중 염격(艶格)이 있다.

‘어리고 아리따운 미인이 님을 만나 애교를 떨다가 님의 입에서 반도 태우지 않은 은삼통(銀三筒) 만화죽(滿花竹)을 빼내어, 재가 비단 치마에 떨어지는 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침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앵두 같은 붉은 입술에 바삐 꽂아 물고는 웃으면서 빨아댄다. 이것이 염격이다.’

안 교수는 ‘연경’에 대해 “조선 후기 사대부의 학술적 관심사가 미미한 주제를 깊이 있게 서술하는 쪽으로 크게 변화했음을 드러내는 구체적 물증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