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시간을 아세요?/안 에르보 글 그림 이경혜 옮김/32쪽 8500원 베틀북(만 4∼7세)
어린 시절 어쩌다 낮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면 이게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이 안 갔다. 그럴 때 오빠는 학교 늦었다고 짐짓 겁을 주었고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모습을 재미있어 하곤 했다. 한 번 속았으면 달리 안 속을 법도 하건만 단잠에 빠졌다 일어날 때는 이런저런 생각을 추스를 틈이 없어서 꼭 속아 넘어가기 마련이었다. 웃음을 터뜨리는 오빠의 얼굴을 보면서 약올라하기보다는 슬며시 안도감이 들었다. 하늘은 아직 밝은데, 땅거미가 서서히 밀려오면서 온 세상은 정말이지 파랗게 물들어가곤 했었다.
아름다워서 슬픈 건지 슬퍼서 아름다운 건지 모르는 이 시간을 사랑한다. 새벽 또한 황혼 못지않게 아름답지만, 그 여운이나 깊이에 있어 황혼을 따라잡기 어렵다. 새벽하늘을 바라보다 아침이 어느덧 와 버린 것을 볼 때의 느낌은 한낮에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바삐 돌아가는 오후를 마주할 때 느끼는 서먹함과 큰 차이가 없다. 게다가 하루를 여는 아침이란 시간은 대개의 경우 바쁘게만 흘러가게 마련이어서 하루를 완상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조망할 여유를 주지 못하지 않는가?
이런 사정은 아이들한테도 별반 다를 게 없으리라. 아침엔 조금이라도 더 자기 바쁘고 일어나자마자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세수하고 유치원이니 학교에 가기 바쁜 아이들 아닌가? 활달한 움직임과 자기표현만이 능사가 아니라 자연을 보다 깊이 바라보고 느끼면서 제 안에서 호흡할 줄 아는 아이로 이끌어주는 것도 교육이라면 이런 시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길러줄 필요가 있다. 아니 아이들에게 이런 심미안은 갖춰져 있고 그것을 그냥 끄집어내 줄 조그마한 계기만 있으면 되는지도 모르겠다. 낮이 끝나고 밤이 오기 전에 나타나는 해질녘의 모습에 시선을 맞춘 이 책은 바로 이런 착상의 신선함과 섬세함 때문에 돋보인다. 매일 마주하는 아름다운 한때를 포착하여 이토록 시적이면서 재미있는 그림들로 표현해낼 수 있다니! 게다가 아름다운 새벽공주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저녁의 파란시간과 어딘가 닮았으면서 매우 다른 새벽의 그토록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이르러서는 어른의 눈에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던 줄거리도 모두 용서가 된다. 읽어주는 엄마 아빠는 고즈넉한 몽상에 젖어들 수 있고, 아이들은 꼬물꼬물 퍼져나가는 상상력과 함께 즐거워 할 수 있는 책, ‘파란시간을 아세요’는 바로 그런 책이다.
주미사 동덕여대 강의전임교수 · 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