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집안이 동강난 민주당을 보며 생각나는 것이 ‘트로이 목마(Trojan Horse)’다.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 서사시의 전설적 트로이전쟁에 나오는 거대한 목마다. 목마 속에 몸을 숨겨 적진에 들어간 커크 더글러스와 병사들이 난공불락인 트로이요새를 함락시키는 영화를 오래 전에 보았다. 그때 감동은 짜릿했다. 서양정치에선 적진에 들어가 국면을 뒤집을 때 ‘트로이 목마’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대통령을 만들어 낸 정당이 둘로 갈라진 것도 따지고 보면 노 대통령의 트로이 목마 효과 아닌가. 다만 짜릿한 느낌은 아니다.
지금 노 대통령이 내세우는 당정분리는 ‘목마 효과’를 굳히는 후속조치인 것 같다. 정당일은 당에 맡겨 대통령이 정당을 지배하던 권위주의를 탈피하겠다는 것이 당정분리 이유다. 명분은 있다지만 현실정치와 크게 어긋나는 것이 문제다. 지금처럼 증오와 배신감, 그리고 혼란만 일으키는 실익 없는 명분이라면 누굴 위한 것인가. 그런데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 애당초 당정분리란 민주당과 거리를 두자는 의도였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분당신드롬 일파만파 ▼
문제는 당정분리 안팎의 부작용이다. 우선 밖으로 번진 분당 신드롬은 정치판을 토막 냈다. 무슨 말로 둘러대든 신당을 뒤집어 보면 민주당이 싫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싫은지가 분명치 않다. 개혁성 운운하지만 지금까지 그 밥에 그 나물끼리 뭐가, 얼마나 다르단 말인가. 대통령은 신당에 우호적 분위기를 시사하면서도 그렇다고 민주당이 싫다고 딱 부러지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민주당 대통령후보라는 ‘원산지 증명’ 때문 아닌가. 그러니 어정쩡할 수밖에 없고 당정분리를 계속 외쳐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젠 몸을 숨기기도 어렵다. 정치판에선 신당은 ‘노무현당’이요, 잔류 민주당은 ‘김대중당’이란 말이 공공연하다. 당정분리는 결과적으로 결별의 화법이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전현직 대통령을 좇아 집권여당이 갈라지는 해괴한 사태 속에서 가뜩이나 허약체질의 정파는 둥둥 떠다니는 형국이다. 게다가 신당추진 세력에서는 ‘노무현 색깔 벗기’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 신당의 진짜모습이 무엇인지 헷갈리지 않을 국민이 있겠는가.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내심 따지는 것은 어느 쪽으로 가야 내년 총선에서의 낙선 위험이 덜하냐는 계산 아닌가. 정치판이 이렇게 표류한 적은 없다. 민심도 따라서 표류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사회적 불안이 여기서 증폭된다는 것이 큰 문제다. 지역타파를 크게 외쳤던 대통령이 되레 지역구도의 심화 가능성을 높였으니 어찌 된 일인가.
또 다른 문제는 당정분리에 내재된 국정혼란이다. 이미 국감현장에서 나타나듯 집권여당이 증발된 상태에서 어느 정파의 협조를 얻어 국정의 국회처리가 제때 가능하겠는가. 대통령이 정책별로 정파나 의원들의 지지를 구하겠다는 미국식 운영을 염두에 둔 모양인데 그것은 구조적인 오산이다. 현 정권과 정파 사이는 물론, 정파간 감정의 골도 이미 깊어졌다. 미국 의회와 달리 우리 의원들은 정당으로부터 자유스럽지도 못하다. 국정의 안정운행을 위해선 한 표의 의회 지지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처지에 정당과 거리를 두겠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국회가 반대하니 어쩔 수 없다고 손들어 버릴 심산인가. 가다가 멈춘 대형 국책사업과 그 많은 대선공약은 어찌 될 것인가. 국회가 골탕을 먹이니 혼 좀 내달라고 국민에게 하소연만 할 것인가. 그것은 책임정치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집권세력들은 ‘네 탓’ 싸움에 빠졌고, 국정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은 오히려 국민이다. 이러고도 희한하게 ‘개혁쟁탈전’을 벌이는데 누가 개혁과 통합을 말할 수 있고,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는가. 개혁과 통합은 더 이상 유권자의 혼을 빼는 주술이 아님이 입증됐다. 책임정치가 실종된 지도 오래다.
▼몰려드는 후폭풍 ▼
이 모두 묘수를 찾다가 너무 일찍 당정분리 환상에 빠진 결과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후폭풍이 밀려온다는 데 있다. 머지않아 반드시 정파간 합종연횡의 합당협상이 벌어진다. 또 다른 ‘트로이 목마’의 역풍이 분다는 말이다. 총선 후엔 국회의원들이 대통령 눈치 볼 일은 더 없다. 자칫 정치적 기반이 무너질 수 있고, 레임덕 현상이 닥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 정도 판세는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