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스크린 산책]언더월드 vs 이퀄리브리엄

입력 | 2003-09-25 17:00:00

이퀄리브리엄. 언더월드


《현대인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충동질하는 느와르 풍의 SF 영화 두 편이 개봉한다. 주인공의 얼음장 같은 표정과 묵시록적 분위기를 풍기는 블랙 롱 슈트, 정체성을 둘러싼 고민, 테크노와 하드록이 뒤섞인 사이버 펑크 음악에는 영화 ‘매트릭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언더월드=호러 영화의 ‘단골’ 주인공인 뱀파이어(흡혈귀)와 늑대인간이 맞붙는다. 영화는 두 집단의 태생에 얽힌 비밀을 파헤쳐 들어간다. 복잡한 계보도가 밝혀지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구조와 음울한 분위기가 주조를 이루므로, 두 괴물집단이 벌이는 질펀한 ‘이종격투기’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늑대인간 라이칸을 사냥해 온 뱀파이어 여전사 셀린느는 늑대인간에게 쫓기던 인간 마이클을 구하지만 마이클은 늑대인간에게 물리고 만다. 셀린느는 라이칸들의 심상찮은 움직임을 뱀파이어 지도자 크라벤에게 알리지만 묵살당하자 다음 세기에 깨어나기로 예정된 흡혈귀 제왕 빅터를 불러내 도움을 청한다. 한편 사랑하는 마이클이 늑대인간이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된 셀린느는 그를 제거해야 할 운명 앞에 고민한다.

미스터리 호러 장르에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주제로 한 멜로드라마를 이종 교배한 이 영화는 관객을 ‘교차시점’에 빠뜨린다. 관객은 △감성적 측면에서는 늑대인간의 잔인한 습격을 받는 뱀파이어를 동정하게 되면서도 △‘선악’ 판단에서는 뱀파이어가 만든 부조리한 계급사회의 희생자인 늑대인간의 편을 들게 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에 직면하는 것.

햇빛을 담은 총알, 은으로 된 레이저 표창과 같은 신무기가 만화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늑대인간과 흡혈귀에 인성(人性)을 불어넣어 전설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내러티브에 기댄 바 크다. 26일 개봉. 18세 이상.

그림1) '매트릭스2-리로리드'의 수평 360도 회전 액션. 그림2) '언더월드'의 수직 360도 회전액션. 그림3) '이퀼리브리엄'의 수직 360도 회전액션.

▽이퀼리브리엄=3차 대전 이후의 지구. 프로지움이란 약물이 투여되는 사람들은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공화국 사령관에 의해 통제된다. 감정을 느끼려는 반역자들을 제거하고 예술작품을 파괴하는 임무를 가진 특수요원 프레스턴은 동료의 자살과 아내에게 내려진 가혹한 숙청조치에 갈등한다. 프로지움의 투약을 중단하면서 그는 감정을 회복한다.

눈여겨볼 대목은 주인공의 손놀림. 쌍권총을 거꾸로 쥐고 사마귀 권법으로 다다닥 끊어 때리는 테크닉을 통해 자신을 포위한 10여명의 공화국 군인을 10초 안에 해치운다. 동양무술을 원용한 이 동작은 주인공과 적과의 거리를 1m 내로 줄임으로써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된 관객이 체감하는 스릴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낸다. 발동작은 배제됐으며, 컴퓨터 그래픽과 와이어 액션을 절제하고 대신 촬영 속도를 조절해 ‘주관적 시간’을 연출하는 방식이 선호됐다.

‘안정’이란 뜻의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은 인간의 모든 감정을 제거시켜 얻어진 역설적 평화를 표현하는 단어. 암흑 속 방에서 프레스턴의 쌍권총이 뿜어내는 섬광이 살육의 불꽃놀이로 이미지화하며 반역자 집단을 처단하는 오프닝 신은 새로운 표현주의적 해석으로 보인다. 주인공 앞에서 막판에 한없이 ‘작아지는’ 공화국 총사령관의 시정잡배 같은 모습이 철학적 상상을 단절시키는 게 흠. 10월 2일 개봉. 15세 이상.

▽두 영화의 액션=공중제비를 돌며 쌍권총으로 총알 세례를 퍼붓는 주인공들의 스타일리시한 액션 장면이 두 영화의 핵심이다.

영화 속에 선보이는 수직 360도 회전은 ‘매트릭스2-리로디드’에 나타난 수평 360도 회전(그림1)의 창조적 변주인 듯. ‘언더월드’의 회전은 ‘도주’에서 ‘공격’으로 상황을 급반전시키는 주인공의 동선을 와이어 액션을 통해 ‘미적(美的)’으로 강조한 경우(그림2). 반면 ‘이퀼리브리엄’은 마루운동에서나 볼 법한 재빠른 공중회전을 통해 방어와 동시에 다수의 적에게 쌍권총을 겨누는 공격을 수행하는 ‘기능적인 동선’을 부각시켰다(그림3).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