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서방선진7개국(G7) 재무장관 회담을 계기로 달러화의 약세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회담 참가국들은 아시아 경제권의 보다 유연한 환율정책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직접적으로 해당 국가를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국제 외환시장에서는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 중단과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상을 촉구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美 원화절상 압력 지속될 듯 ▼
실제로 공동성명 발표와 함께 일본 엔화가치는 달러당 111엔대까지 급등했고 위안화도 선물시장에서 처음으로 8위안대 아래에서 거래되는 등 달러화에 대해 초강세를 보이는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원화 역시 충격의 소용돌이를 비켜가지 못하고 달러당 1150원대까지 환율이 급락했다.
이번 두바이 공동성명을 두고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빚어졌던 ‘장기간 달러화 약세’ 현상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두바이 공동성명이 또 한번의 장기간 달러화 약세 국면을 알리는 신호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달러화 약세를 천명한 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당 250엔 수준이던 엔화환율은 결국 140엔대까지 큰 폭으로 떨어졌었다.
이러한 관측이 나오는 것은 현재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이 처해 있는 경제적 상황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매년 각각 5000억달러에 달하는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더욱이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인하와 감세정책을 편 결과 쌍둥이 적자는 더욱 불어나고 있다.
반면에 무리한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경기회복세는 신통치 않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경기부양의 마지막 카드로 환율을 끄집어 낸 것으로 보인다. 내년 11월로 다가온 대통령선거를 의식해 주요 지지층인 산업계의 달러화 약세 요구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환율전쟁’의 타깃은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국가들이다. 중국 일본 한국 대만 등 아시아 4개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는 전체 무역적자의 40%가 넘는 2000억달러에 이른다.
미국 의회는 이미 8월 초 이들 4개국에 대한 환율조작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환율전쟁은 결국 아시아국가 통화의 전반적인 평가절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금년 들어 800억달러가 넘는 외환시장 개입을 했다. 이 때문에 이번 두바이 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과거만큼 개입이 여의치 않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집중적인 평가절상 압력을 받고 있는 중국은 환율 변동 폭을 확대하되 정부의 환율통제가 가능한 ‘복수 통화 바스켓 제도’를 도입해 소폭의 평가절상을 용인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의 원화 역시 달러화에 대해 지속적인 절상압력을 받을 것이다. 우선 원화가 엔화와 강한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어 엔화 강세의 상당부분은 원화 강세로 반영될 것이다. 또한 위안화의 평가절상도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의 전반적인 절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재계회의에서 프레드 버그스텐 미국 국제경제연구소장은 중국 위안화의 25% 절상을 전제로 원화의 10% 절상이 바람직하다는 구체적 의견을 제시하기까지 했다.
▼시장 다변화-협상력 제고 절실 ▼
한마디로 미국에서 공화당 정부가 집권하는 한 달러화의 약세 기조는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 친기업적인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슈퍼 301조’라는 통상의 칼을 휘둘렀고, 동시에 대외교역 불균형 시정을 위한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공화당 집권기간에는 달러화 약세 기조가 고착됐다.
부시 행정부의 본심이 드러난 이상 앞으로 상당기간 원화가 약세 기조로 반전되는 상황은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앞으로 정부는 고부가 수출상품 개발과 수출시장 다변화 등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면서 기업들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사업 및 인력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용이하도록 제도 및 규제 환경을 대폭 정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환율을 둘러싼 국가간 갈등과 통상마찰을 피할 수 있도록 대외협상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