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봄은 재즈의 민중적 기원을 잊지 않으면서 동시에 재즈가 수용되는 사회적 맥락을 정확히 짚어냈다. ‘퓨전 재즈의 거장’인 재즈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왼쪽)과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베니 카터. 동아일보 자료사진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에릭 홉스봄 지음 김동택 외 옮김/559쪽 1만8000원 영림카디널
나는 에릭 홉스봄을 ‘프란시스 뉴톤’이란 가명으로 먼저 접했다. 그는 이 가명으로 ‘재즈의 사회학’이란 책을 지은 바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프란시스 뉴톤이 홉스봄인지도 모르고 ‘재즈의 사회학’ 프랑스어판을 탐독했었는데, 그 이유는 이 책이 재즈에 관한 놀라울 정도로 신선한 접근법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재즈판(Jazz Scene)’이란 영어판으로 책을 접하면서 이 사람이 홉스봄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나서야 재즈는 그가 건드린 수많은 학문적 소재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점을 알았다. 홉스봄 학문의 전체 영역은, 사실 나처럼 관심사가 음악 분야로 쏠려 있는 사람에게는 조망할 수도 없을지 모른다. 다만 재즈라는 창으로 그의 세계를 들여다볼 뿐.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는 에릭 홉스봄이 196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 비교적 짧은 글들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급진주의, 농민, 현대사, 재즈 등을 다룬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다양한 테마의 중심에는 보통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홉스봄의 따뜻하면서도 엄정한 시각이 있다. 그는 서문에서 이 책이 “출생 결혼 사망에 대한 기록을 관리하는 근대국가의 관공서가 아니면 그 이름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고 아예 선언하듯 못 박고 있다.
대부분의 글들은 홉스봄의 산문정신이 자유로이 발휘된 에세이들이다. 재즈 파트를 보면, 홉스봄은 기존의 재즈비평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솔직함으로 재즈를 다시 바라본다.
그는 재즈가 갖고 있는 민중적 기원을 잊지 않으면서 1950∼60년대의 새로운 사회적 환경 속에서 재즈가 재수용되는 변화된 사회학적 맥락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이런 날카로움과 홉스봄 특유의 신랄함은 통상적인 ‘무해 무덕한’ 비평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신선함을 제공한다.
정확한 학문적 엄정성을 갖고 쓴 논문들은 아니지만 오히려 이 분방한 글들 속에서 홉스봄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다. 홉스봄을 소개할 때는 으레 ‘영국의 가장 권위 있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나 영국도, 마르크스주의도 어쩌면 그의 정체성이 겪은 어원 그대로의 ‘디아스포라(흩어짐)’가 기착한 피난처인지 모른다. 그는 1917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계 영국인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독일어권 지역에 살다가 히틀러의 폭압을 피해 런던으로 이주해 왔다.
이처럼 복잡한 정체성의 소유자인 그가 소수집단의 문화와 언어,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신적 ‘디아스포라’의 여정에서 만난 수많은 이름 없는 피난민들과 대면하는 과정에서 홉스봄의 학문세계가 태어난 것은 아닐까. 그 대면의 현장이 바로 이 산문들을 통해 기록되고 있는 것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원제 ‘Uncommon People’(1999)성기완 시인·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