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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식물은 살아남기' 펴낸 이성규 박사

입력 | 2003-09-26 18:03:00


“식물을 흔히 수동적인 존재로 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을 가장 치열하게 진화시켜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쓰는 눈속임 수법을 보면 숙련된 마술사 같다고나 할까요.”

이성규(李性圭·65) 전 상지대 교수는 최근 사진작가 김정명씨와 함께 백두산 지역의 식물 생태를 담은 ‘식물의 살아남기’(대원사)를 펴냈다. 올 8월 정년을 맞은 그의 퇴임을 기념하는 책이었다.

2000m가 넘는 백두산 정상 주변은 툰드라 지대. 혹독한 추위와 수시로 불어대는 초속 15∼35m의 바람, 밤톨만 한 크기의 우박 등 극한조건이 식물의 생존을 위협한다.

꽃 모양이 고양이 눈처럼 생긴 ‘괭이눈’은 잎을 꽃처럼 보이게 하는 속임수를 쓴다. 꽃이 피면 꽃 주변의 잎이 서서히 노란색으로 물들어 약 보름 뒤에는 꽃과 잎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가 되는 것. 같은 분량의 꽃을 만들려면 에너지 소모가 크기 때문에 잎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택해 곤충을 유인하는 것이다. 꽃가루받이가 끝나면 잎은 다시 푸른빛을 찾아간다.

“10여년 전부터 백두산 사진을 찍어온 김 작가가 제게 묻더군요. ‘사진을 찍다 보면 꽃이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잘 알아들 수가 없다’고. 그래서 제가 한두 가지씩 알려주곤 했는데 저나 김 작가나 서로 갈증이 나서 재작년부터 아예 함께 본격 탐사에 나섰습니다.”

식물생태에 바람이 끼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초속 35m까지 바람을 내는 송풍기를 들고 다니며 인공바람을 만들어 생태를 관찰하기도 했다.

실제 백두산 정상에 초속 30m의 바람이 불면 사람도 몸을 납작 엎드려 피해야 한다. 사진 찍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 그래서 송풍기와 배터리를 메고 다니며 인공 바람을 만들어야 했다.

그는 여름철 한때 백두산 정상을 노랗게 물들이는 두메양귀비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다. 두메양귀비는 맑고 바람 없는 날엔 꽃잎을 활짝 열고 햇빛을 받다가 바람이 불면 고개 숙여 꽃잎을 닫은 채 강풍을 거스르지 않고 그 흐름에 따라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

“절대자 자연 앞에 겸손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 온 것이 식물의 지혜입니다. 꽃의 아름다움만 보지 말고 그 지혜까지 함께 보면 어떨까요.”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