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더월드’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나오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뱀파이어 셀린느는 적수인 늑대인간들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그들이 미행하고 있던 인간 인턴 마이클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데, 하필 그는 이미 늑대인간들의 두목인 루시안에게 어깨를 물리고 만 뒤-늑대인간의 바이러스를 가진 인간의 피를 늑대인간이 수혈하면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였다. 이 불운한 두 연인은 앞으로 어찌 될 것인가?
이 설정만 가지고 가슴 아픈 멜로드라마를 연상했다면 여러분은 할리우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자, 여러분이 할리우드의 영화사 간부라고 치자. 늑대인간들과 뱀파이어들이 전쟁을 벌이는 영화를 만드는 데 수천만 달러의 돈을 퍼붓고 있다고 치잔 말이다. 그런 영화를 만들면서 가슴 아픈 멜로드라마에 시간과 돈을 들이고 싶겠는가? 당연히 연애는 뒤로 미뤄놓고 ‘매트릭스’와 같은 액션을 쏟아 부으라고 주문할 것이다.
‘언더월드’는 정말 그렇게 했다. 멜로드라마를 기대했다면 보지 않는 것이 좋다. 이 영화엔 ‘그런 것’ 따위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멜로적 요소는 아주 가끔 주인공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해줄 뿐 독자적인 실체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영화가 진짜로 공들여 보여주는 것은 쿨한 가죽옷을 입은 뱀파이어들과 변신하면 개의 머리를 한 헐크처럼 보이는 거대한 늑대인간들이 다양한 최첨단 무기들을 동원해가며 서로를 쏴대는 것이다. 그 뒤에는 거의 자코비안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거창한 음모가 버티고 있긴 한데, 그건 여러분이 직접 알아내시길 바란다. 사실 그것도 그렇게까지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더월드’에는 이 영화만의 구경거리가 있다. 아마 고스(Goth)족 관객들은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의 전쟁이라는 설정에 열광할 것이다. 셀린느를 연기한 케이트 베킨세일의 팬들이라면 이 배우가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가죽옷을 입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것이다. 털 없는 늑대인간들에게 짜증이 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늑대인간의 변신 과정이 꽤 그럴싸하니, 이런 장면에 감동받는 관객들도 개봉을 기다려볼 만하다.
영화는 흥미로운 비주얼에 비해 내용이 결여된 느낌을 주고 이를 덮고 있는 스타일도 완전히 독창적이지는 못하다. 라텍스와 총성이 뒤섞인 와이어 액션만으로도 만족하는 관객들이라면 이런 것들이야 상관없겠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 이상을 기대할 것이다.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주간동아 403호)
◇ Tips
케이트 베킨세일 -‘진주만’과 ‘세렌디피티’에서 로맨틱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그가 뱀파이어 전사 셀린느로 나온다.
고스족 - 문화적 아웃사이더인 고스족은 고딕(Gothic) 문화에 뿌리를 두고 죽음과 공포, 어둠을 찬양하는 경향을 보인다. 가수 마릴린 맨슨처럼 검은색 옷과 해골, 장신구로 치장하고 얼굴은 하얗게 칠하는 것이 고스족의 대표적 스타일이다.
자코비안적 - 영국의 명예혁명 후 스튜어트 왕조 시대에 유행한 잔혹한 연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