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이야기
취재를 위해 올해 5월에 미국 시카고에 있는 모토로라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인상적이었던 점은 창업자 가족인 ‘갤빈 패밀리’에 대한 직원들의 변함없는 애정이었습니다.
상당수 직원들이 창업주인 폴 갤빈의 자서전을 인용하면서, 창업주가 제시한 ‘모토로라 정신’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더군요.
그런데 9월 19일 모토로라는 창업주의 손자인 크리스토퍼 갤빈 회장의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이유는 경영실적. 모토로라는 휴대전화 시장에서 90년대 중반 노키아에 1위 자리를 내준 데 이어 올해부터는 매출액에서 3위인 삼성전자에 추월당했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갤빈 회장은 이사들과 회사의 향후 전략을 논의한 끝에 “이렇게 의견차이가 있다면 차라리 내가 사퇴하겠다”며 먼저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둘째 이야기
최근 방한한 제너럴모터스(GM)의 슈겐다 최고정보담당 임원(CIO)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96년 취임 이후 신차개발기간을 48개월에서 24개월로 줄일 정도로 GM개혁에 큰 기여를 한 인물.
인터뷰 말미에 “정보기술(IT)업무 아웃소싱을 맡고 있는 EDS와의 계약이 2006년 만료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EDS는 GM의 자회사로 있다가 1996년 분사한 회사.
그러자 그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현재로선 아무도 알 수 없다. GM은 가장 뛰어난 회사와 일을 함께 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마치 ‘당연한 문제를 왜 묻느냐’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질문한 제가 머쓱해질 정도였습니다. 그는 “경쟁이 없으면 나태해지기 마련”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미국 자본주의가 강한 이유
엔론 사건 등 연이은 회계부정 사건 이후 한때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감이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이는 미국 자본주의의 기초를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이었기 때문.
그런데도 미국 자본주의가 건재한 것은 이처럼 모든 직원이 존경하는 창업주 가족인데도 불구하고 경영 실적이 좋지 않으면 스스로 주주들에게 책임을 지는 회사, 철저한 경쟁을 신앙처럼 존중하는 회사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종식 경제부기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