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돈 교수가 사스 바이러스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사스가 보건상의 위험에 비해 사회 경제적 위험이 더 큰 질병이라고 강조했다. 권주훈기자 khj@donga.com
1969년 미국 공중위생국 국장은 “전염병의 시대는 갔다”고 공언했다.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지구촌에서 천연두가 사라졌다”고 공식선언했다. 인류는 마침내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이길 것이라는 장밋빛 꿈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그 꿈이 오만(傲慢)에서 나온 환상(幻想)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80년 에이즈라는 가공할 만한 신종 전염병이 모습을 드러냈고 또 에볼라 출혈열, 홍콩 조류독감, O-157, 광우병, 사스 등 신종 전염병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1970년대 사라졌던 ‘전염병내과’가 1980년대 ‘감염내과’란 새 이름을 갖고 유망 전공과로 떠올랐다.
서울대병원 오명돈 교수(45)는 감염내과가 부상(浮上)할 무렵 이 분야를 평생의 전공으로 삼았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의학자로 성장했다. 그는 1999년 에이즈를 치료하기 위해 3개의 약을 순차적으로 복용하는 것과 한꺼번에 먹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지에 관한 치료 지침을 마련, ‘항바이러스 치료’지에 발표하는 등 세계 권위지에 3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아직 많은 사람이 감염내과가 무엇인지 모른다. 과에 대해 소개해 달라.
“간염을 치료하는 간염내과인 줄 아는 사람도 있다. 감염내과 의사는 세균, 바이러스 등이 일으키는 감염질환을 치료한다. 간염, 유행 눈병 등 특정 장기나 조직에만 생기는 전염병은 해당 장기를 보는 과의 의사들이 치료를 전담하는 경우가 많지만 에이즈처럼 여러 장기에 생기는 전염병은 감염내과에서 본다. 또 병원에서 수술을 받거나 특정한 치료를 받는 도중 이유 없이 열이 나는 등 감염질환이 의심될 때 문제를 해결한다. 또 보건당국이 전염병 관리 정책을 세울 때 조언을 한다.”
오 교수는 “그런데 현재 전국적으로 전문의가 57명뿐인 데다 젊은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에이즈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는데, 에이즈는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곧바로 발병하는가.
“그렇지 않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곧바로 두통 고열 근육통 열꽃 등 독감 증세가 나타났다가 곧 사라진다. 그리고 5∼10년 증세 없이 병이 몸 안에서 진행됐다가 갑자기 폐렴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건강한 사람은 혈액 1μL에 면역세포인 CD4 세포가 500∼1000개 있지만 에이즈에 감염되면 200개 정도까지 줄어들었다가 폐렴 증세가 나타난다.”
―에이즈는 치료가 불가능한가.
“그렇지 않으며 상당 부분 치료가 가능하다. 3, 4가지의 약을 함께 복용하는 칵테일 요법이 보급되면서 2차 감염 없이 멀쩡하게 사는 것이 가능해졌다. 감염 직후 치료를 받으면 완치도 가능하다. 다만 사회의 인식이 문제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데 걸리면 죄인이 되는 사회 분위기를 고쳐야 한다.”
―방금 전 감염 초기에 치료받으면 완치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의료진 중에 에이즈 환자를 치료하다 주사바늘에 찔릴 경우 약을 복용하는 ‘예방적 치료’를 받는데 이에 대한 효과가 입증됐다. 이런 점에 착안해 미국에서는 동성연애자가 에이즈 환자와 성행위를 하다 콘돔이 찢어지는 등의 불상사가 생기면 약을 복용토록 하고 효과가 있는지 연구 중이다. 혈액검사를 통해 초기에 감염 사실을 알아 약을 복용해 병이 완치된 경우도 있다. 혹시 감염이 의심되는 행위를 한 뒤 독감 증세가 나타난다면 병원에서 예방적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에이즈에 감염되면 3개월이 지나 혈액에 변화가 나타나므로 이때에 검사를 받는다. 더러 감염이 됐는데도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는 1년 뒤 재검사를 받는다. 가장 좋은 것은 정기적인 혈액검사시 에이즈 검사를 포함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에이즈에 강하다며 외도 때 콘돔을 끼지 않는 남성이 있는데….
“그것을 자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CCR5란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킨 사람은 에이즈에 잘 안 걸리는데 2000년 국립보건원 이주실 박사 등과 함께 한국인의 유전자를 조사했더니 한국인에게는 이런 유전자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 포경수술을 받은 사람이 많은 것이 에이즈 환자가 적은 이유가 될 수는 있다. 2000년 미국 연구진이 국립보건원(NIH)과 존스 홉킨스대, 컬럼비아대의 공동연구팀이 우간다에서 부인이 에이즈에 감염된 187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포경수술을 받지 않은 남편 137명 중 16.7%가 1년 내에 에이즈에 감염된 반면 포경수술을 받은 남편 50명 중에는 한 명도 에이즈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2년 미국 시카고의 카를로스 에스타다 박사가 미국비뇨기과학회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남성의 음경 포피 점막 세포에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인체 내에서 둥지를 트는 수용체(受容體)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포경수술을 받았다면 에이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나.
“포경수술이 감염 확률을 약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 이상으로 의미를 확대해서는 안 된다. 가장 안전한 것은 외도를 하지 않는 것이고, 모르는 사람과 성행위를 할 경우 반드시 콘돔을 이용해야 한다.”
―오 교수는 메티실린 내성 포도상구균(MRSA)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MRSA는 무엇인가?
“포도상구균은 토양이나 생물의 피부 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세균이다. 이것이 사람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활동을 개시하곤 하는데 이 중 강력한 항균제인 메티실린에 잘 듣지 않는 것을 MRSA라고 한다. 이 세균은 병원 감염의 주범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지난해 환자들이 병원에서 집단적으로 MRSA에 감염됐다고 소송을 제기하고 나서야 감염 전문의를 고용했다. MRSA에 듣지 않으면 반코마이신이라는 항생제를 쓰는데 우리 연구팀이 1996년부터 전국 8개 대학병원에서 분리된 MRSA 균주 700개를 대상으로 반코마이신 내성 포도상구균(VRSA)이 있는지 찾았지만 행히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오 교수는 병원에서 세균이 옮겨 병이 생기는 ‘병원 감염’은 병원이나 의사의 의욕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병원 감염을 줄이기 위한 법적 장치가 시급하다. 현재 병원에서 감염된 환자를 격리 치료할 경우 치료비를 삭감당하기 일쑤다. 감염 방지를 위해 필수적인 일회용품도 보험 인정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병원 감염을 줄이면 결국 총 의료비가 감소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감염내과의 명의들▼
▽최강원(59)=국내 에이즈 환자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했으며 한국인 에이즈 환자의 바이러스의 형태, 내성, 합병증 등에 대한 숱한 연구 및 진료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또 병원 감염 관리 시스템의 모델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으며 항균제를 적절히 사용할 수 있도록 기준 지침을 제정했다. 대한감염학회, 대한병원감염학회,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의 회장과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송재훈(45)=세계 최초로 중합효소연쇄반응을 이용하여 환자의 혈액에서 장티푸스의 원인균을 검출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1996년에는 아시아 12개국이 항생제 내성에 대해 공동으로 연구, 대처하기 위한 국제연구기구인 ANSORP를 조직했고 2년마다 서울에서 항생제 내성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다. 또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국제 연구재단인 ARFID를 설립했다.
▽김준명(50)=1991년 미국 워싱턴대 AIDS임상연구소 임상교수로 3년간 연구한 뒤 귀국해 에이즈 예방과 치료법 개발에 주력해왔다. 1993년 국내 첫 에이즈 단체인 대한에이즈예방협회(www.aids.or.kr)를 창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최근 인종적 특성과 감염 형태가 유럽, 아프리카 등과 다른 아시아의 에이즈 전문가 모임 ‘동아시아 HIV 네크워크’결성을 주도했다.
▽박승철(63)=현재 활동 중인 감염학계 의사 중 최고 원로로 기생충감염, 항생제치료, 주요 감염질환 등과 관련한 폭넓은 연구를 수행했다. 국내 주요 감염질환의 예방과 관리 대책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으며 최근 국내 독감 예방접종사업의 확대실시를 이끌어 냈다. 올해 사스 전문가 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사스 예방에 공헌했다.
▽정문현(44)=여행의학 전문가로 뎅기열, 말라리아 등 해외에서 유입된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국내 폐렴의 원인균 규명, 쓰쓰가무시병의 치료제 비교 등의 연구를 수행했다. 환자의 발열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서도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대한화학요법 학회 평의원이며 대한감염학회 간행위원을 맡아 이 학회의 영문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김민자(47)=1980년대 추수기 농부에게서 유행하는 렙토스피라 병의 원인 균주인 ‘라이’의 특성을 규명했다. 지난해 레지오넬라 폐렴의 유전자 백신을 개발해 동물에서의 방어효과를 입증했고, 올해엔 소변으로 배출되는 여러 가지 레지오넬라균들의 공통 항원을 최초로 개발했다. 목의 림프절에 생긴 결핵의 치료 지침, 항생제 내성발현 억제를 위한 방법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신완식(54)=면역기능이 저하된 환자에게서 생기는 감염질환을 치료하는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 세계적 학술지에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 환자 등의 항암치료 및 조혈모세포이식 전후 발생하는 감염질환에 대한 논문을 50여편 발표했다. 유한의학상, 송촌 지석영 GSK의학상 등을 받았다. 대한감염학회 회장, 대한의진균학회 부회장, 한국학술진흥재단지정 중점연구소지원사업 책임자 등을 맡고 있다.
▽강문원(56)=1998년부터 4년 동안 대한감염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이때 5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만든 책 ‘항생제의 길잡이’를 발행했다. 현재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 회장, 한국에이즈퇴치연맹 부회장,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이사, 강남성모병원 진료부원장 등을 맡고 있다. 11월에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2회 동아시아 감염관리학회의 조직위원장직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백경란(41)=1996년 국내 최초로 해외여행 중 발생하는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여행의학 클리닉’을 개설했다. 항생제에 내성이 매우 강한 박테리아 세포의 집합체인 ‘바이오 필름(biofilm)’과 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VRE)에 관해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현재 삼성서울병원 감염관리실장을 맡아 병원 내 환자, 의료진, 내원객을 상대로 감염 관리 활동을 벌이고 있다.
▽김우주(45)=1998년 국내에서 전국적 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의 발생 실태를 조사했고 분자역학적 연구를 실시했다. 항생제 내성 세균 관리의 문제점을 짚고 대책을 제시했다. 국립보건원에 겸직 근무하면서 국내에서 체계적인 인플루엔자 감시체계를 세우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홍역, 볼거리 등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질환의 국내 발생 실태, 바이러스 실체 규명 등의 연구를 하고 있다.
▼어떻게 뽑았나▼
청출어람(靑出於藍)이었다. 감염내과 부문에서는 서울대병원의 오명돈 교수가 스승 최강원 교수보다 많은 추천을 받아 베스트닥터로 선정됐다.
이는 전국 14개 대학병원의 감염내과 교수 37명에게 △자신의 가족에게 감염질환이 있을 때 진료를 부탁하고 싶고 △최근 3년 동안 진료 및 연구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의사를 5명씩 추천받아 집계한 결과다.
서울대병원의 한 전임의는 “평소 오 교수가 스승인 최 교수를 만난 것이 일생의 큰 행복이라고 말하곤 했고 다른 대학병원의 후배 교수들은 오 교수를 만나 학문적 도움을 받는 것이 행운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실상이 추천에 반영된 듯하다”고 말했다. 활발한 국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교수는 호흡기내과 출신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고른 추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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