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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철의 性보고서]숨기면 숨길수록 ‘작아지는’ 당신

입력 | 2003-09-28 17:38:00


며칠 전 62세의 남자가 진료실을 찾아왔다. 진료의뢰서에 ‘당뇨병과 고혈압을 지병으로 갖고 있다’고 기록돼 있어 발기부전 때문에 찾아왔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환자는 의외로 오줌줄기가 힘이 없고 자다가도 소변이 마려워 한두 번 일어난다는 등 배뇨장애를 호소했다.

검사를 5분가량 했을까. 환자가 느닷없이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물어 왔다. 순간 ‘이 환자가 발기력 회복을 기대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해 “혹시 발기에 문제가 있어 오신 겁니까”라고 물었다. 환자는 그제서야 “그렇다”고 대답했다.

필자가 “다른 환자들도 기다리는데 왜 처음부터 말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느냐”고 말했더니 그는 “어떻게 그런 문제를 바로 얘기할 수 있느냐”고 답했다.

이 사람처럼 발기부전 환자들은 흔히 소변줄기가 약하다거나 고환의 통증을 호소하며 성기의 크기와 모양에 불만을 나타내는 등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환자들은 의사가 눈치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문의라도 이를 알기란 쉽지 않다.

의사들도 환자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짐작이 간다 해도 일부러 거북한 문제를 물어보지는 않는다. 진료시간이 빠듯하기도 하지만 성에 대한 기본지식이 부족하거나 의사 자신이 성문제를 가지고 있을 때 불편해서 피할 수도 있다.

40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시행한 ‘화이자 글로벌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최근 3년간 정기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로부터 성기능에 문제가 있는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5%(세계평균 9%)에 불과했다. 그러나 의사가 먼저 성기능에 문제가 있는지 물어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35%(세계평균 47%)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의 처방은 환자가 증상을 제대로 얘기할 때 기대할 수 있다. 실제 부끄러워해야 할 병이란 없다. 체면을 생각해 일부러 피해가거나 과학적으로 입증도 되지 않은 ‘비방(秘方)’에 매달리면 그만큼 치료는 지연되고 때로 영원히 놓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성기능장애환자들이 협회를 설립해 자신의 치료 경험담을 소개하는 등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중앙대 용산병원 비뇨기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