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용카드 규제 대책을 내놓은 지 15개월 만에 이를 번복함에 따라 신용불량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부터 정부는 경기활성화를 위해 신용카드 규제 완화와 은행 가계대출 확대 방안 등을 내놓았고 그 결과로 지난해 가계부실 확대와 신용불량자 양산사태를 초래했다.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경기침체가 장기화하자 경제에 독(毒)이 될 수 있는 신용카드 사용 확대를 경기부양 수단으로 다시 동원한 것이다. 더군다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어 선거용이라는 의혹도 사고 있다.
▽왜 신용카드를 경기대책으로 동원했나=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7일 간담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카드사 관련 규제 완화는 급격한 소비 위축에 대한 대책”이라며 카드사용 규제 완화가 경기부양대책임을 분명히 했다.
재경부는 신용카드사들이 6월 말 현재 줄여야 할 초과 현금대출이 20조원에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 말까지 이를 무리하게 줄일 경우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가 더 얼어붙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카드사 부실 문제와 신용불량자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시점에서 1년여 만에 규제를 완화하는 것에 대해 금융감독원 직원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카드사의 1개월 이상 연체금액 비율이 10%가 넘을 경우 경영개선권고를 내리도록 한 조치는 올 4월부터 시행됐으나 채 반년도 되지 않아 이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을 완전히 뒤집는 행위라고 금감원 직원들은 비판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이 같은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이번 카드소비 확대정책을 내놓은 것은 내년 총선에 대비한 일종의 선심성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카드규제 완화가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나=한국개발연구원(KDI) 신인석(辛仁錫) 연구위원은 “정책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큰 문제”라며 “이럴 경우 정책 의도가 시장에 제대로 반영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KDI는 ‘신용불량자 원인과 대응방향’이라는 보고서에서 ‘규제 완화→잠재성 부실 축적→규제 강화→잠재부실 현재화’가 신용불량자 양산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KDI는 또 건전성 규제 강화조치는 감독 정책의 일관성 유지 차원에서 신뢰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경부는 이번 조치로 무리한 대출회수가 줄면서 신용불량자가 감소할 것으로 낙관했지만 전문가들은 잠재적 신용부실이 오히려 커지면서 결국 신용불량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기가 카드소비 확대로 활성화된다고 해도 이는 ‘빚잔치’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김상조(金尙祚·한성대 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이번 정부조치는 소비 위축을 일부 줄이는 효과는 있겠지만 감독 규정을 사문화시키고 업계 로비를 부추기는 부작용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카드업계도 정부의 정책변화를 예견한 듯 현금대출 비중을 늘려온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 국감자료에 따르면 올 2·4분기(4∼6월) 전업카드사의 현금대출 비중은 전체 여신의 61.0%를 차지해 전 분기의 53.5%보다 7.5%포인트나 상승했다.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