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수 고려대 교수·법학 이른바 ‘안풍(安風)’사건과 대북송금사건 재판에서 관련 피고인들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물론 이 두 사건은 그 배경, 시기와 성격 등에서 차이가 난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안풍은 김영삼 전 대통령 때 이야기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가 막대한 정치자금을 세탁해 96년 제15대 총선자금으로 한나라당에 건넸고, 이 불법한 돈의 상당 부분이 15대 총선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후보들에게 지원금 명목으로 지급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2001년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으나 방탄 국회와 여러 가지 지연전술에 휘말려 근 3년간이나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이번 1심 법원의 유죄판결로 사건의 성격 등을 둘러싼 논란이 일단락 됐다.
▼비민주적 권력남용에 경종▼
YS 정부 시절 문민화의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도 유독 정치판은 검은돈과 결탁해 혼탁한 오폐수를 그대로 방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달 ‘세풍’ 재판에 이어 안풍 재판에서도 관련 피고인들이 단죄를 받았으니, 이로써 그동안 음성적인 정치자금 모금 및 관리를 둘러싼 불법 관행에 한층 더 엄한 경종이 울리게 된 셈이다.
최근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국정감사에서 안풍 자금이 당초 알려진 것처럼, 안기부 예산이 아니라 YS의 대선잔여금 내지 기업들로부터 끌어 모은 돈이라는 식으로 주장하며 유죄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는 논지를 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칼국수로 점심을 하며 기업으로부터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했던 YS의 입장과도 다를 뿐 아니라 옛날 ‘보스’를 끌어내려 악취 나는 물길을 바꾸어 보려는 시도로서 국민의 법감정을 크게 해치는 일이다.
이에 비해 대북송금사건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의 이야기다.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소중한 만남의 역사적인 의의를 과소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상존하는 우리의 실정법 체계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나, 이에 부수되는 일련의 준비과정은 통치행위론을 끌어들여야만 설명이 가능하다. 이 점은 이미 대북송금 특검이 수사결과를 내놓을 때부터 원용한 법 논리의 틀이기도 하다.
대북송금 합의는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이뤄졌다. 그래서 이것이 남북정상회담의 대가가 아닌가라는 점이 정치적 논쟁의 초점이었고, 아직도 이 논쟁의 불씨는 남아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대북송금의 정상회담 대가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다.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 송금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라도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었을 가능성, 대북송금의 의도에 대한 의견 대립 등을 고려할 때 그 대가성 여부는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애로(隘路)를 비켜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통해 대북비밀송금이 비록 통치행위인 남북정상회담과 무관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대북송금 자체를 통치행위라고 주장할 수 없음은 분명해졌다. 비록 논점을 비켜간 아쉬움은 남지만 재판부의 유죄 결론은 우리의 법감정과도 부합하는 것이라 하겠다. 물론 대북송금 과정에 관여한 피고인들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소명감을 가지고 애쓴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막후에서 거액의 떡값을 주고받은 실세도 있었으니 남북정상회담의 대의가 이런 일들로 인해 퇴색한 것도 사실이다.
▼‘절차적 정의’ 새겨 들어야▼
최근 이 두 가지 정치적 성격이 짙은 사건에 대한 법원의 연이은 판결을 접하면서 우리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권력기관, 특히 최고 통치권력이 민주화의 실현과정 속에서도 법과 절차적 정의를 무시하고 비민주적으로 권력을 남용했다는 점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서는 정당한 목적도 정당한 수단을 통해서만 합법성을 얻을 수 있다. 사회의 민주화 추세에 비추어 유독 구태의연한 부분이 있다면 정치권력이다. 권력의 투명성과 절차적 정의의 요구는 특히 탈권위와 분에 넘치는 개혁을 꿈꾸는 현 정권 실세들도 꼭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김일수 고려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