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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서]유윤종/창비 파주시대 열리던날

입력 | 2003-09-29 18:03:00


26일 경기 파주시 파주출판단지에서는 ‘창작과비평사’의 신사옥 입주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창작과비평사’의 이름을 ‘창비’로 바꾼다는 공식발표도 있었다. 뒷마당에 마련된 입주식장에는 선거유세에서나 볼 수 있는 이동식 대형 화면이 설치됐다.

“안 해본 짓을 많이 하는구먼.” 백낙청 창비 편집인을 비롯해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임재경 전 한겨레신문 부사장, 박석무 전 학술진흥재단 이사장 등이 건축가 김석철씨가 설계한 새 사옥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감회에 젖었다.

창비의 어제를 회고하기 위해 단상에 오른 신경림 시인은 30여년 전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당시 종로에 있던 신구문화사의 책상 하나를 빌려 계간 ‘창작과 비평’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시를 기고했던 저는 원고료가 언제 나오나 하고 사무실을 기웃거렸지만 딴 소리만 하는 거였습니다. 사들고 간 술만 매번 날렸습니다.”

폭소가 터졌다.

“소설을 기고하고 기웃거리던 소설가 황석영에게까지 술값을 뜯겼습니다.”

앞줄에 앉은 황씨도 웃음을 터뜨렸다.

이날 식장에서는 90년대 초 발간 이후 현재까지 400만권이 팔려 창비의 ‘경제적 성장’에 공헌했던 ‘소설 동의보감’의 작가 이은성씨(작고)의 부인이 다른 유공자들과 함께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공식행사가 끝나고, 백낙청 교수 등 ‘창비 1세대’들과 고세현 대표 등 현 실무진이 뷔페 접시를 들고 마주앉았다. 고 대표 등은 1세대에게 회사명 변경 등 일련의 변화를 어떻게 보는지 조심스럽게 묻고는 창비의 정체성에 관해 “지킬 건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1세대는 “젊은 감각을 믿겠다”며 격려했다. “왜, 처음 어린이책 낼 때도 돈 안 되는 짓만 한다고 1세대는 말렸지만 결국 그게 창비 성장의 기반이 됐잖아.” 아직은 지어 입은 새 옷이 어색한 느낌. 입 밖으로 낼까 말까 하던 그 속마음을 ‘창비의 어제와 오늘’이 터놓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