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덴의 동쪽’ ‘워터프런트’의 감독 엘리아 카잔(사진)이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4세.
사회와 개인의 관계 등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쏟아 온 카잔 감독은 반유대주의를 소재로 만든 ‘신사협정’(1947)과 부두 노동자들과 자본가 계급의 대립을 다룬 ‘워터프런트’(1954)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카잔 감독은 1909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그리스인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 네 살 때 가족과 함께 뉴욕에 정착한 카잔 감독은 연극계인 브로드웨이를 발판으로 활동을 시작해 영화계의 거장으로까지 성장했다.
그는 연극배우로 출발했으나 연출로 방향을 돌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등을 무대에 올려 토니상을 받았다. 영화감독으로서 그는 1945년 데뷔작 ‘브루클린에서 자라는 나무’ 이후 ‘혁명아 사파타’(1952) ‘에덴의 동쪽’(1955) ‘초원의 빛’(1961) 등을 발표해 무려 21개의 아카데미상 후보와 9개의 아카데미 주연 배우상을 따내는 성과를 올렸다. 특히 ‘에덴의 동쪽’은 제임스 딘이 10대의 우상으로 떠오른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1947년에는 리 스트래스버그 등 동료들과 함께 ‘액터스 스튜디오’를 설립해 우수한 배우들을 양성하기도 했다. 그가 거느린 사단에는 말론 브랜도, 제임스 딘, 워런 비티 같은 쟁쟁한 배우들이 속해 있었다.
카잔 감독은 주옥 같은 할리우드 명작들을 만들었지만 지울 수 없는 오점도 남겼다. 공산당원을 색출하기 위한 매카시 광풍이 불어 닥쳤던 1952년 하원 반미(反美)활동위원회에 소환됐을 때, 그는 30년대에 공산당원으로 활동했음을 고백하는 동시에 함께 활동한 동료들의 이름을 댄 것이다. 이로 인해 그에게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카잔 감독은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식장 밖에서 그의 수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는 상황에서 카잔 감독은 “아카데미의 용기와 관용에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지만 일부 관객들은 여전히 냉랭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