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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싱크탱크]한국노동연구원

입력 | 2003-09-30 17:22:00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가장 숨 가쁘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두뇌집단(싱크 탱크)’은 어딜까.

해답은 어느 정권 때보다 분규의 횟수가 늘고 갈등의 수위도 높아진 노사(勞使)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청년실업과 주5일 근무제, 외국인 고용허가제 등 굵직한 사회적 이슈에는 언제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 서 있었다.

노사갈등을 합리적으로 풀어나갈 묘안을 고민하는 노동연구원 식구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이원덕 원장, 정인수 부원장, 정진호 김정한 윤조덕 최영기 방하남 유길상 이장원 김주섭 연구위원. 권주훈기자

▽노사갈등이 심화될수록 연구원의 책임도 커진다=노동연구원은 ‘출신 배경’부터 한국 사회의 심각한 노사갈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십년간 억눌렸던 노동계의 욕구가 1987년 6·29선언 이후 터져 나오면서 정부 일각에서 노동전문 연구기관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울산대 총장을 역임했던 고(故) 배무기(裵茂基) 교수가 노동연구원의 출범 준비를 맡았다.

88서울올림픽 직전인 8월 5일 연구원이 정식 출범했다.

초대원장을 맡은 배 원장은 연구원을 자율성과 독립성을 갖춘 기관으로 키워내는 과정에서 정치권 및 정부와 마찰을 빚었고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90년 대학으로 복귀하기도 했다.

노동연구원은 노동정책에 대한 수많은 제언을 통해 정부의 노동정책 개발과 노사관계 개선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아왔다.

출범 당시부터 노동연구원에 몸 담아왔던 이원덕(李源德) 원장은 “당시는 박정희(朴正熙) 정권 이후 자리를 굳혔던 ‘개발연대 식’ 노사관계가 깨어지면서 노동계의 욕구가 폭발적으로 분출하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15년이 지나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도 한국사회는 한국적 노사관계의 모델을 만드는 ‘역사적 과도기’에 서 있으며 노동연구원이 그 중심에 서 있다”고 자부했다.

▽한발 앞서서 대비한다=노동연구원은 사회적 이슈가 될 핵심적인 노동문제들을 2, 3년 전에 미리 예견하고 관련 연구 보고서를 내놓았다.

2001년 발간된 김승택(金承澤) 연구위원의 ‘근로시간 단축이 국민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최근 국회를 통과한 주5일 근무제 도입의 논쟁을 촉발한 보고서였다. 이후에도 김 연구위원은 정부와 경제계, 노동계가 주5일 근무제 도입을 둘러싸고 팽팽히 대립하는 과정에서 정책도입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안주엽(安周燁) 전병유(田炳裕) 이병희(李炳熙) 연구위원이 2000년 공동으로 내놓은 ‘학교교육에서 노동시장으로-실태분석 및 정책방향’ 보고서는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한국사회의 최초의 종합 보고서였다. 이 연구위원은 2002년 ‘학교로부터 노동시장으로-이행실태와 정책과제’라는 추가 보고서를 통해 구체적인 정책방안까지 제시했다. 이후 한국에서 청년실업 문제가 거론될 때 이 2개의 보고서는 ‘교과서’로 자리 잡았다.

▽세계 노동연구의 메카를 꿈꾼다=현재 노동연구원의 ‘미래 비전’은 세계 노동 연구의 허브(중심) 기관으로 자리 잡는 것. 이를 위해 내년에는 세계적 노동문제 학회를 한국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후진적 노사관계’로 선진국의 비판을 받는 한국에서 ‘노동연구의 메카’라는 목표는 가능한 것일까.

이에 대해 정인수(鄭寅樹) 부원장은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노동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외환위기 이후 10%를 넘었던 실업률을 한국이 어떻게 단기간에 해결했는지를 배우려 한다”고 답했다.

그는 또 “중국 등 한국의 뒤를 따르는 나라들도 언젠가는 한국과 비슷한 노사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발전단계에서 워낙 큰 차이가 나는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갈등극복 경험은 이들에게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노동연구원은 빌 클린턴 미 대통령 당시 대통령 자문기구인 ‘미래 노사관계위원회’를 주도했던 MIT의 토머스 코칸 교수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발로 뛰는 연구원들=노동연구원의 연구원은 박사 37명을 포함해 90명. 연구원의 대부분은 노사정위원회를 포함, 정부의 각종 위원회의 위원으로 ‘겹치기 출연’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노동계, 기업과 대화하며 ‘발로 뛰는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5, 6대 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이 원장은 국립대인 충남대 교수직을 팽개치고 평 연구위원으로 이 연구소에 합류한 노동연구원의 ‘산 역사’이자 노동경제 분야의 권위자다.

외환위기 이후 ‘실업대책모니터링 센터 소장’을 맡았던 정인수 부원장은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몸값’이 더욱 높아진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 연구업무의 현장지휘를 맡는 김주섭(金周燮) 연구조정실장은 직업교육훈련 분야 전문가로 연구원의 ‘안방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방하남(房河男) 고용보험센터 소장은 고용보험과 기업연금 연구의 중심적 역할을 맡고 있으며 윤조덕(尹朝德) 산업복지연구센터 소장은 국내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핵심인물이다.

정진호(鄭進浩) 동향분석실장은 최저 임금 분야의 권위자로 정부와 민간 기업에서 임금문제가 생길 때마다 조언을 구하는 학자. 이장원(李장源) 국제협력실장은 해외 노동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노동기준과 관련한 국제비교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전임 부원장인 유길상(柳吉相) 선임 연구위원은 23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있다가 학계에 진출, 외국인 고용허가제 등의 제도도입에서 수완을 발휘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