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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무비인사이드-공포영화 감독들 ‘공포의 장소섭외’

입력 | 2003-09-30 17:38:00


2일 개막하는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폐막작에 선정된 ‘아카시아’(박기형 감독). 박 감독은 영화를 찍으면서 ‘주택 난’을 뼈저리게 겪은 감독 중 한 명이다. 작품을 찍을 때마다 촬영할 공간을 찾느라 몹시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98년 그의 데뷔작인 ‘여고괴담’은 한국 영화계에서 공포영화의 흥행 가능성을 입증한 작품. 하지만 그 이면에는 촬영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며 ‘문전박대’를 당한 사연이 있다. 피를 뿌리고 목을 매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어서 와서 찍으라”고 허락할 학교는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 당시에 썼던 박 감독의 궁여지책.

“어떤 영화예요.”(학교 관계자)

“예, 영화 이름은 ‘아카시아’예요. 아카시아 나무 아시죠. 한 마디로 여고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고생 명랑기 같은 영화입니다.”(박 감독)

나중에 그의 설명과는 전혀 다른 영화 내용이 알려지자 학교 측은 펄쩍 뛰었지만 제작진의 설득으로 넘어갔다는 후문이다. 당시 그가 엉겹결에 영화 제목으로 둘러댄 ‘아카시아’가 이번에 영화로 만들어진 것도 묘한 인연이다.

그는 “5년이 걸렸지만 결국 아카시아를 찍은 셈 아니냐”며 “공포영화는 공간 자체가 주는 이미지가 중요해 장소 섭외에 많은 공을 들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정을 소재로 한 공포물 ‘아카시아’가 촬영된 장소는 경기 용인시에 있는 2층 전원주택. 제작진의 목표는 정해졌지만 섭외는 쉽지 않았다. 주연인 심혜진의 이름이 등장하고 촬영 뒤 집을 원상 복구해 준다는 계약서를 쓰고 나서야 촬영 허가가 떨어졌다. 3개월간 촬영에 사용료는 약 3000만원이었다.

그래도 ‘아카시아’는 작품의 이미지와 맞는 공간을 쉽게 발견해 주택난을 쉽게 해결한 편이다.

‘장화, 홍련’에서 김지운 감독이 원한 영화 속 공간은 빅토리아시대 풍이어서 집을 ‘임대’한 것이 아니라 직접 ‘건축’했다. 전남 보성의 한 주택을 빌려 찍었는데 가로등과 나무를 심는 등 조경을 다시 했다. 내부는 경기 남양주시 종합촬영소에 세트를 만들고 분위기에 맞는 소품들로 채웠다. 이 작품의 마케팅을 담당한 영화사 ‘봄’에 따르면 이 비용만 7억원이었다.

그런가 하면 ‘거울 속으로’도 서울 지역에 있는 백화점 촬영이 어렵게 되자 대전의 모 백화점에서 촬영했다. ‘살인의 추억’은 장소 섭외를 위해 영화 제목이 한때 ‘사랑의 추억’으로 살짝 바뀌기도 했다.

‘똑! 똑! 똑!’

오늘도 낯선 집 앞에서 문을 두드리는 공포 영화 감독들. ‘주택난’ 때문에 코미디나 멜로 영화를 찍는다고 애교 섞인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또 다른 고민이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