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건동 대학로극장에서 상연하는 ‘무진기행’은 작가 김승옥씨의 소설을 각색한 연극이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지만 연극이라는 장르에 맞춰 어느 정도 변화를 주었으리라고 예상한 관객들은 마치 소설을 고스란히 무대에 옮겨놓은 듯한 작품에 놀라게 된다. ‘읽는’ 소설이 아니라 ‘보는’ 소설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감각적이고 감수성 넘치는 소설의 문체는 배우의 독백과 대사로 무대에서 오롯이 되살아난다.
이 연극의 연출가 채윤일씨(58)는 “김승옥 선생이 원작의 분위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무대에 올려줄 것을 당부했다”고 말했다.
뇌중풍으로 투병 중인 원작자 김씨는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두 번씩이나 이 연극을 관람한 뒤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소설 ‘무진기행’은 1964년 발표됐지만 연극으로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 단지 줄거리만을 차용해 연극으로 옮기기에는 벅찬 ‘문학성’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채씨는 올해 자신이 세운 목표를 모두 이룬 셈이다.
올 초 자신의 전 재산인 24평 아파트를 담보로 1억5000만원을 빌린 그는 자신의 대표작과 신작을 1년간 릴레이로 무대에 올릴 계획을 세웠다.
‘무진기행’은 올해 그가 연출한 5번째이자 마지막 작품. 다섯 편의 무대를 결산하면 지금까지 대략 1억2000만원의 적자가 났다.
채씨는 “하고 싶은 일 하는데 이 정도도 못 하겠느냐. ‘망하면 세 살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집을 잡혔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요즘 그의 불만은 나이가 들어 며칠만 밤을 새워도 피곤하다는 것. 그럼에도 환갑을 눈앞에 둔 중견 연출가의 의욕만은 젊은 세대 못지않다.
평생 자신의 예술을 향한 꿈과 뜨거운 열정을 잃지 않은 채씨, 그는 여전히 ‘열혈 청년’이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