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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이영숙/우리집 세남자의 軍服

입력 | 2003-10-01 17:56:00


필자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1970년대만 해도 시골마을에서 TV는 물론 라디오도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과 함께 잘 사는 집에 가 라디오에 귀 기울이는 것이 유일한 ‘재미’이자 ‘놀이’였다.

특히 10월 1일 ‘국군의 날’이면 행사 방송을 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나는 대목이 있다. “지금 사열대 앞을 6·25 당시 압록강에 제일 먼저 도달한 ○○사단이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우리 특전부대 용사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고 있습니다.” 유창한 말솜씨의 아나운서 목소리가 높아질 때면 마치 나도 씩씩한 군인이 된 듯 들뜨고 어깨가 으쓱할 정도였다.

그런 ‘인연(因緣)’ 때문인지 몰라도 필자는 직업 군인과 결혼했다. 24년간 계속된 남편의 군 생활로 인해 전후방지역은 물론 이름 모를 골짜기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이사를 해야 했다. 하루 일과를 남편의 푸른 군복을 말끔히 다림질하면서 시작하곤 했다.

지금은 남편이 은퇴한 관계로 제복을 다림질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매년 이맘때면 옷장 깊숙이 간직한 남편의 군복을 어루만지며 옛날을 회상하곤 한다. 요즘은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육군화랑부대에서 근무하는 아들이 주말을 이용해 가끔 집에 오곤 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얼마 전에는 국방부에 근무하는 시동생이 사정상 한 달 동안 우리 집에서 출근하게 됐다. 그 덕분에 시동생의 제복을 다림질하면서 ‘역시 나는 푸른 제복 없이는 살 수 없는 여자구나’하는 생각에 가슴 뿌듯함도 느꼈다.

1일은 55번째 ‘국군의 날’이었다. 푸른 제복의 군인들이 행군하는 모습을 TV로 시청하면서 어린시절 경험했던 가슴 벅찬 느낌이 다시금 몰려왔다. 전후방 각지에서 부대의 전통과 명예를 걸고 ‘조국 수호’를 다짐하고 있는 푸른 제복의 젊은 아들딸들을 생각하면 항상 든든하고 자랑스럽다. 지금도 어느 전선의 골짜기에선가 전선을 지키는 ‘초병의 푸른 전투복’을 생각하면 옷깃이 여며진다.

이영숙 경기 고양시 일산구 일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