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날 누룽지 한 조각 먹어보아라.
밥 짓다 태웠다고 푸념할 일이 아님을
꼭꼭 오래 씹어 본 사람은 그 맛을 알리라.
인생도 씹을수록 맛이 나는 누룽지처럼
더 타고 속이 타야 멋도 알고 맛도 알까?
-시집 '사라진 나라를 꿈꾸다'(모아드림)중에서
‘하늘천 따지, 가마솥에 누룽지 박박 긁어다 나도 먹고 너도 먹자.’
말만 들어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 저것들은 간식이 귀하던 시절 너나 없이 즐기던 음식이다. 가마솥 대신 전기밥솥을 사용하면서 저 촌스러운 누룽지도 없어지는가 했더니 이제는 누룽지 기능이 추가된 밥솥이 나온다. 누룽지 정식이며 누룽지 백숙 전문점까지 유행하고 있으니 조상 대대로의 오랜 입맛이란 유전자 속에 각인되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저 시인은 누룽지의 ‘고소함’보다 ‘(남보다) 더 타고 속이 탄’ 사연에 주목한다. 과연 누룽지는 밥솥에 쌀을 안칠 때 가장 밑바닥에 깔려서 누구보다도 뜨거운 불 찜질을 당한 것들이다. 가장 먼저 익고 끝까지 견딘 것들이다.
쌀은 볍씨를 뿌려서 추수하기까지 여든여덟번(米=八十八)이나 손이 간다고 한다. 누룽지는 그 쌀이 따뜻한 이밥이 되어 누군가의 목구녕 아리랑 고개로 넘어가기 직전 마지막 여로의 산물이다. 문득 고소하고 구수하기만 하던 누룽지가 묻는다. 네 속이 탈수록 ‘독(毒)’ 대신 ‘고소함’을 품을 수 있겠느냐고. 한소끔 다시 끓이면 시원한 숭늉이 될 수 있겠느냐고.
반칠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