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e노블리안스]송진흡/더 크게 보이는 김재익 前수석

입력 | 2003-10-05 17:18:00


기자들은 보통 칭찬에 인색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정부나 정치권, 기업 등 취재 대상에 대해 대체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감시해야 하는 언론의 숙명 때문이죠.

하지만 며칠 전 본보 지면에 소개한 김재익(金在益)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취재하면서 ‘참 대단하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제가 아는 김재익은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아까운 인재라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고인의 20주기를 맞아 지인(知人)들이 추모집을 낸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를 하기 시작하면서 그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김재익의 업적은 지면에 소개된 것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물가를 잡고, 국가주도형 한국경제를 자율 체제로 전환시킨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면서 전자나 정보통신 산업의 토대를 닦은 것도 그의 작품이었죠. 현재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한국산 제품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거의 어김없이 김재익이 있었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닙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김재익이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시절 사무관으로 함께 근무했던 변양균(卞良均) 기획예산처 차관에 따르면 김재익은 1970년대 말 대한항공 외에 국적 항공사를 하나 더 만들어 경쟁체제를 이뤄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정부 안에 환경 관련 기관을 둬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는군요.

김재익은 인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제가 취재를 하면서 접촉했던 인사 대부분이 ‘인간 김재익’을 ‘성직자 같은 인품을 가진 사람’이라고 회고했습니다.

지시를 내릴 때나 정책 토론을 벌일 때 항상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의견을 청취했다는 것이죠.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기획원 사무관들과 수시로 접촉하면서 아이디어를 구했다고 합니다.

남덕우(南悳祐) 전 국무총리는 추모집 머리말에 “김재익과 같은 공직자가 지금 청와대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충분히 가슴에 와 닿는 말이었습니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