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오산에서 캠코더와 하드디스크용 부품을 생산하는 경성디지털.
이 회사 회의실과 복도 곳곳에는 유럽연합(EU)의 환경 규제 현황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지침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환경 문제만 전담하는 직원도 따로 두고 있다. 월 매출 20억원 정도의 중소기업인 이 회사가 이처럼 환경 규제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고객사인 소니 때문이다.
경성디지털의 제품 가운데 하나가 캠코더의 액정화면을 본체에 고정시키는 경첩. 지난해 9월 일본 소니 본사는 ‘그린 파트너십’이라는 이름으로 환경 규제 관련 지침을 통보하면서 이를 만족시키지 않으면 거래를 끊겠다고 통보해왔다. 순전히 금속으로만 이뤄진 손톱만 한 부품이었지만 소니는 재료인 황동에 들어있는 카드뮴의 함유량을 물고 늘어졌다.
자재팀 곽진태 차장은 “회사의 사활이 걸린 일이라 몇 개월간 서류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얼마 전에는 실사까지 받았다”며 “환경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행히 카드뮴 함유량이 기준치 이하라는 사실이 확인돼 2년간 거래를 계속할 수 있게 됐지만 만일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떠안는다는 제품보증서에 서명해야 했다.
▽친환경적 공급 네트워크=글로벌 기업 중에서도 소니는 환경을 키워드로 부품업체 관리를 혹독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7월부터 전 세계의 공급업체에 총 300여명의 인력을 파견해 친(親)환경성과 제품 내 유해 물질 함유 여부에 대한 면밀한 감사를 벌이고 있다.
소니가 부품업체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EU의 규제에 대응하려면 혼자만 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규제 준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소니는 공급 네트워크를 남보다 먼저 친환경적으로 재편해 다가오는 환경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하고 있다.
일본의 다른 전자업체들도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NEC는 2005년까지 기업의 환경성을 평가해 기존 공급업체의 40%를 정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TDK와 후지쓰, 마쓰시타 등도 공급업체의 3분의 1 이상을 쳐낼 예정이다. 기준에 미달한 업체들은 2차 공급업체로 전락하게 된다. ‘환경 경영’을 화두로 공급 네트워크의 재편이 이뤄지는 것이다.
▽국내 업계의 대응=삼성전자는 올해 4월 ‘녹색구매 지침’을 모든 공급업체에 배포했다. 이어 5월에 열린 설명회에는 600여개 공급업체가 모두 참석해 귀를 기울였다. 삼성은 부품업체에 친환경 경영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지원을 하고 환경 등급을 매긴다. 삼성측은 등급에 따라 부품업체를 차별적으로 관리할 예정이다.
현대자동차 역시 내년부터 본격적인 그린 구매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특히 EU의 폐차 재활용 법규를 만족시키기 위해 부품에 포함된 중금속 사용량을 조사하고 재활용성을 높이는 시도를 하게 된다.
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 이귀호 팀장은 “글로벌 기업들은 공급 네트워크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바꿔 경쟁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며 “친환경 시대에는 기업의 경쟁력이 기업 자체의 역량보다 오히려 기업이 포함된 공급 네트워크의 역량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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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