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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사회 대책 서둘자]노인 일자리가 없다-1

입력 | 2003-10-06 19:39:00


《“나이 많은 사람은 업무효율이 낮다고 하지만 나는 믿지 않아요. 기회만 있다면 젊은 사람의 몇 배라도 일할 수 있어요.”

맥도날드 부산 해운대점에서 고객 불편사항 처리를 맡고 있는 박준규(朴駿圭·64) 매니저. 식품업체 A사 전무를 거쳐 관광호텔의 총무이사로 60세까지 일했던 그는 올 6월부터 시간당 3000원을 받으며 햄버거 빵 굽는 일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시간급이 오르며 매니저급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박 매니저처럼 다시 일할 기회를 찾은 고령 은퇴자는 많지 않다. ‘60세 청춘’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현실에서 높은 인건비와 낮은 생산성 때문에 일터에서 밀려난 ‘노인 실업자’는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패스트푸드체인 한국맥도날드에서 일하고 있는 노인들. 하지만 이런 취업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고령자는 드문 것이 현실이다. -사진제공 한국맥도날드

▽젊어지는 기업, 밀려나는 ‘젊은 노인’=최근 명예퇴직을 통해 KT에서 나간 정모씨(51)는 “남들은 기본급의 50개월치를 받고 퇴직한다고 부러워하지만 앞으로 20∼30년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 퇴직한 선배들은 ‘명예퇴직금 대신 5년만 더 일할 기회를 준다면 다시 일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전체 직원의 12.6%인 5500여명이 퇴직하면서 KT 임직원의 평균연령은 40.7세에서 39.5세로 낮아졌다. 명퇴자의 연령대는 46∼50세가 33.6%, 41∼45세가 29.4%로 40대가 전체의 63.0%를 차지해 ‘사오정(45세 정년)’이라는 유행어를 실감케 했다.

인터넷채용정보업체인 잡링크의 윤태순(尹太舜) 헤드헌터는 “요즘 대기업 부장들이 퇴직하고 중소기업 임원으로 옮길 때 중요한 것은 나이”라며 “중소기업 사장의 나이도 30대 후반∼40대 초반이 많아 45세를 넘겨 은퇴하면 중소기업 재취업도 어렵다”고 말했다.

▽고(高)학력 노인 늘어난다=서울대 상대를 나와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재무담당 부사장까지 지냈던 박모씨(55)는 올해 초 은퇴한 뒤 일자리를 찾고 있으나 아직까지 ‘실업 상태’다. 그는 여러 차례 중견기업에 재무담당 임원으로 지원서를 냈으나 “우리 회사에 너무 과분하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박씨는 “학력이나 경력이 재취업에 오히려 짐이 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14%를 넘는 ‘고령 사회’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2019년에 노년을 맞을 현재 40∼44세의 인구 중 고등학교 졸업자는 45.9%, 대학졸업(전문대 포함) 이상은 25%가량이다. 또 2026년으로 추정되는 초고령 사회(노인 비중 20% 이상)에서 노년을 맞을 35∼39세의 인구는 고등학교 졸업이 49.6%, 대학 졸업 이상이 35%로 고학력 노인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달 말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릴 실버취업박람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서울시립 북부노인종합복지관의 박준기(朴俊騎·44·여) 연구개발부장. 그는 “고급 공무원, 교장 등 고학력 퇴직자의 취업 상담이 몰리지만 맞는 일자리를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고 말했다.

▽제2의 경력을 준비하라=내년 3월 정년퇴직 예정인 포스코의 변문석(卞文錫·56) 주임은 요즘 회사가 마련한 ‘아웃플레이스먼트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준비해 보일러 1급 기사 자격증 등 3개의 자격증을 땄고 추가로 5개의 자격증에 도전할 예정이다.

변 주임은 “건설회사 등에 재취업을 목표로 따로 남아 오후 11시까지 공부하고 체력 유지를 위해 오전에는 헬스클럽에 다닌다”면서 “퇴직금 등을 고려할 때 현재 연봉(6000만원)의 3분의 1만 받아도 생활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공선표(孔善杓) 컨설팅센터장은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은퇴 연령은 젊어지는 상황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경험에 연계된 ‘제2의 경력(세컨드 커리어)’을 미리부터 설계해야 한다”면서 “국가적으로도 고령층의 경력과 지식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지식사회’로 옮겨가는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팀장=권순활 경제부 차장

▽팀원=박중현 신치영 최호원

차지완 김광현 송진흡

신석호 이나연

고기정 기자(경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