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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 생각에는]사랑 가르쳐준 누에야 고마워

입력 | 2003-10-07 16:46:00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초등학교 앞 풍경들이 있다. 재잘거리며 교문을 나선 꼬마들의 눈길을 한순간에 사로잡는 노오란 병아리들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가며 이제껏 한 번도 사주지 않았던 엄마인데도 아이는 이번에도 집에 들어서서 책가방을 내려 놓기가 무섭게 돈을 달라고 조른다. 친구들과 같이 병아리 사기로 했다면서.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집에서 동물을 키우는 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 아이들은 늘 햄스터나 토끼를 키우는 친구집에 다녀오면 투정을 부리곤 했는데 지난 봄, 여름에 소중한 경험을 했다. 아는 분한테서 누에 10마리를 종이컵에 넣어서 얻어왔는데 뽕잎으로 만든 사료를 먹고 하루하루 커가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먹이를 주며 살피던 작은 아이는 어느새 어른 손가락만 해진 누에가 괴로운 듯 머리를 흔들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진드기 같은 것을 그때그때 잘도 찾아서 잡아주곤 했다. 몇 번의 허물벗기가 끝나고 눈처럼 하얀 고치를 짓고 정말 어느 날 아침에 나방이 나왔을 때 그 놀라움이란…짝짓기가 끝나고 수많은 알을 낳고 모두 죽었을 때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마음 아파했는지….

문제는 그 수많은 알들이었는데 두 아이의 친구 녀석들이 며칠 들락거리더니 어느새 다 없어졌다. 얼마 뒤 온동네에 퍼진 그 알들에서 개미보다 작은 누에들이 깨어났다. 우리 아파트 단지 안에 딱 한 그루밖에 없었던 뽕나무가 그날부터 몸살을 앓았다. 아이들은 정말 열심히 자기들의 누에를 먹여살리기 위해 매일 하굣길에 뽕나무에 들렀고 수시로 전화를 했다. 뽕잎을 먹는 소리를 들으며 정말 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봄비 오는 소리가 들린다고 신기해했다. 나무 옆에 있는 경비초소 아저씨의 눈길을 피해서 마치 아이들은 수박 서리하듯 뽕잎을 따오곤 했다.

하지만 누에를 굶길 수는 없는 일! 급기야 나무에는 잎을 따지 말라는 팻말까지 붙었고 이제는 아빠 엄마가 나서서 누에먹이를 책임졌다. 집집마다 고치가 지어지면서 뽕잎전쟁도 끝이 났다. 아이들은 모두 누에박사들이 되었다. 마음이 따뜻한 꼬마박사들이….

조그만 파리만 봐도 질색을 하던 작은아이가 누에를 손에 올려놓고 귀여운 듯 바라보곤 하던 일이 지금도 신기하다. 책으로만 보던 것을 직접 기르고 만지니까 아마 친숙하게 느껴졌나 보다. 매일 열심히 먹이를 주고 들여다보던 아이의 진지한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작은 곤충 하나하나도 다 소중한 생명이 있고 모두가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혜경 서울 강동구 고덕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