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린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사진제공 프리비젼
여기 두 연인이 있다. 10여년 전 이들은 여자의 서른 번째 생일 날 이탈리아 피렌체의 두오모 대성당에서 함께 있자고 약속한다. 물론 이들의 머리와 가슴에 사랑이 혹시 깨질 수도 있다는 '불길한 가정'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마침내 성당의 종소리가 댕그렁 울리고 남자는 기다리지만 여자는 오지 않는다.
일본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는 10여년에 걸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러브스토리이자 두 젊은 연인의 성장기를 담았다.
이 사랑의 궤적을 다룬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두 남녀 작가가 남자(Blu)와 여자(Rosso), 두 주인공의 시점으로 교대로 집필한 뒤 '블루'와 '로소'라는 제목으로 각기 책을 펴내 화제를 모았던 작품. 1999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다.
두 연인은 어떻게 됐을까.
그 남자. 언약이 깨졌다고 생각하며 돌아서던 준세이(다케노우치 유타카)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서는 순간 약속한 여자 아오이(陳慧琳·천후이린)를 만나 하룻밤을 지낸다.
그 여자.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 애인과 헤어진 아오이는 준세이를 만나지만 다시 이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음을 밝히고 밀라노행 기차를 탄다.
여기서 끝났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영화는 준세이와 아오이의 밀라노 재회로 관객에게 '해피 엔드'라는 마지막 선물을 안겨준다. 상업영화다운 결말이지만 '해피 엔드'는 영화 속에서 두 연인이 겪은 여러 차례의 '냉정(冷情)'과 어울리지 않는다. 두 연인이 그렇게 사랑하고 집착했다면 연인의 동의가 없는 아오이의 낙태 등이 헤어지고 갈등하는 이유가 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좀 더 가슴 찡한 러브스토리로 아련하게 기억에 남을 기회를 놓쳐버렸다.
영화가 준세이의 감정선에 무게 중심이 두어지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아오이에 대한 심리묘사가 섬세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
'냉정…'은 이 같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가을에 연인들이 즐길만한 멜로 영화다. TV에서 활동하다 이 작품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다케노우치의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15세 이상 관람 가. 10일 개봉.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