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을 하던 상하이 임시정부 요인이라도 뒤늦게 돌아왔단 말인가. 나라 안이 떠들썩하고 공영방송이란 데선 특집을 만들어 그를 민주투사 반열에서 다뤘다. 지난 37년간 남과 북 어느 쪽도 택하지 않은 ‘비판적 성찰자’이며 ‘경계인’을 자임한 송두율씨. 그런데 그는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다. 몰랐다고 둘러댈 일이 아니다. 정치국 후보설이 세간에 나돈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미심쩍었으면 애당초 다루지 말았어야 했다. 미화의 배경에 의혹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불을 지펴 놓고 한마디 사과로 끝낼 일인가. 노동당원이 민주투사인양 그려진 사건이 그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
▼곳곳에 뻗친 ‘이념 뿌리’ ▼
송씨는 처음부터 경계인이 아니다. 생경한 표현과 난해한 논리로 남북 어느 쪽도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보통사람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는 북한 노동당원이다. 그런데도 무엇 때문에 이리 빼고 저리 빼는가. 복잡하게 이야기할 것 없다. 노동당원이고 정치국 후보위원인 그는 북으로 간 사람이다. 이번엔 남쪽에서 살아 보겠다고 왔으니 경계인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쪽도 택하지 않겠다고 했다.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 지식을 앞세운 교묘한 논리로 남한 사회를 한번 휘저어 보겠다는 것인지, 대단히 고약하고 불쾌하다. 남으로 넘어왔지만 그의 머리에 들어찬 것은 변하지 않는 북의 메시지 아닌가. 외국에서는 통했을지 몰라도 잘못 짚었다. 한국사회를 물렁하게 보았다면 큰 착각이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송씨의 말 바꾸기를 시시콜콜 따지고 싶지 않다. 큰 거짓말 속의 잔가지일 뿐이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사회 곳곳에 스며든 이념적 색깔이다. 그가 구속이 되든, 국외추방이 되든 송씨는 우리 사회 안에 그의 메시지 한 자락을 크게 깔아 놓는 효과는 십분 거둔 셈이다. 90년대 초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국내 친북 좌파와 운동권이 크게 흔들릴 때, 벼랑 끝에 섰던 이들을 다시 결속시킨 것이 그의, 북한의 시각에서 북을 이해해야 한다는 ‘내재적 접근론’이다. 이번에 그 논리를 현장에서 직접 설파한 셈이 되었으니 앞으로 추종자들은 큰 힘을 얻지 않겠는가. 그래서 하는 말이다. 노동당 고위 간부가 버젓이 들어왔는데도 ‘왜, 어떻게’를 묻는 것이 과연 색깔 씌우기요, 매카시즘이란 말인가. 자칭 민주진보세력은 국가안위가 근본적으로 흔들려도 끄떡없는 사람들인가. 그렇게 되레 색깔론으로 덧씌우고 호도한다고 덮어질 일이 아니다. 이념공세 운운하지만 이 정도 사건이면 자초지종을 규명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어찌 소모적이란 말인가. 국가체제를 위협하는 언동에 손놓고 있는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당장 송씨가 머문 독일도 체제를 흔드는 좌익세력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지 않은가. 사회통합이 아쉬운 시기에 ‘남남갈등’까지 떠안고 말았다. 이념갈등의 파장이 이토록 큰데 언제부터 우리 오감은 마비됐는가. 이런 지경이라면 제2, 제3의 송두율은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다.
▼누가 ‘민주’를 부르짖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송씨 사건에 대해 ‘건수 잡았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야당의 공세를 겨냥한 것이겠지만 그렇게 간단히 옆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좋아할 일이 아닐뿐더러 대단히 심각하게 보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 ‘국가정보원 수사와 무관하게 청와대에 초청하고 싶었다’고 한 대통령의 진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념적 혼돈에 발이 빠진 것은 아닌가. 송씨 사건은 지금까지 곧잘 지칭돼 온 ‘민주화 세력’의 한 단면을 보여 주었다. 민주화운동의 복잡한 갈래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공산주의자들은 민주주의 체제 속에 숨어들어 쓰러뜨릴 때까지 ‘민주’를 부르짖는다는 점이다. 민주화 세력을 위장한 북한 세력이 엄존한다는 말이다. 정부는 뒤섞여 있는 두 세력을 과연 구분하고 있는가. 구별할 능력은 있는가 묻고 싶다. 지금 남쪽 땅에 숨어든 북의 간첩과 동조세력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적과의 동침’에 국민은 불안할 뿐이다. 송씨가 북한 노동당에 가입한 것이 73년, 그로부터 10년 뒤 83년 북한은 미얀마(버마) 아웅산 묘소 암살폭파사건을 저질렀다. 정부 고위 인사 17명이 처참하게 숨진 현장을 필자는 피투성이로 걸어 나왔다. 바로 20년 전 오늘 아침이다.
최규철 논설주간ki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