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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일과꿈]백지연/나는 인터뷰가 좋다

입력 | 2003-10-08 18:19:00


누군가는 인생을 이렇게 구분했다. 20대는 배움(learning)의 시대, 30대와 40대는 얻음(earning)의 시대, 50대부터는 줌(giving)의 시대라고. 이 구분을 스스로에게 적용해보니 나는 늦게 철이 드는 사람인지, 아직도 배움과 얻음이 혼재된 시간을 살고 있는 자신을 본다. 그러나 나는 좋아하는 일을 통해 아직도 ‘늦깎이 배움’을 계속하고 있는 내가 좋다. 방송이 내게 쉼 없는 배움을 주고 있다. 그중의 백미는 ‘인터뷰’다.

▼한명 한명 만날때마다 배움의 기쁨▼

십수년간 뉴스를 진행했고 지금도 YTN의 ‘백지연의 정보특종’과 SBS의 ‘백지연의 정상회담’을 매일 진행하다 보니 수많은 인물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한명 한명의 인터뷰이(inter-viewee)를 만날 때마다 나는 그들로부터 늘 배움의 도전을 받는다.

물론 이는 시청자들이 무언가 얻고 배울 수 있도록 충실한 매개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식에 따른 도전일 것이다. 이런 도전이 갖는 빛깔은 인터뷰이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정치인을 만날 때면 질문은 강해지고 때로는 공격적이 될 수 있다. ‘나라를 위해’라는 말이 상투화된 사람들을 상대로 국민 일반이 갖는 식상함을 시원하게 뚫어줄 대변자가 돼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에 대해 개인감정은 없지만 그들을 만날 때면 뭐랄까, 이상야릇한 책임감이 요동치곤 한다. 듣고 보는 이들의 체증을 해소해주고 싶은….

질문의 강도가 세질 때 인터뷰이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인터뷰 도중 “Hot questions make me hot(매서운 질문 때문에 열받는다)”이라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L의원, 인터뷰가 끝난 뒤 커피를 청하며 “좀 진정하고 가자”며 호흡을 조절하던 K의원…. 한 고위 관료는 보좌진이 과잉 ‘심기경호’를 하느라 인터뷰 중간에 끼어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는 인터뷰 직후 자기방어를 위한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강도 높은 인터뷰로 때로 인간적 원망을 살 수도 있다는 점이 시사관련 인터뷰를 하면서 느끼는 고충이지만, 인간 탐구 인터뷰(human interview)는 이보다 더 어렵다. 감동적 인생, 역전의 인생, 성공 신화의 주인공들에게서 보통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낯선 방송 출연으로 긴장감에 얼어붙어 버린다면 인터뷰는 끝장이다. 전신마비로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가 마음을 다잡고 건설회사의 사장으로 성공한 주인공이 마이크가 꺼진 다음에야 “아휴, 자살이 늘어나는 세상에 해줄 말이 많았는데…” 하고 떠난다면 그날의 인터뷰는 완전실패다.

따라서 인터뷰어(interviewer)는 음악가와 만날 때는 함께 음악에 빠져야 하고 화가와 만날 때는 함께 그림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음악이 들리지 않고 그림이 낙서로 보인다면 자신이 가진 오감과 잠재의식까지 총동원해야 한다. 성공의 열쇠는 인터뷰이와의 심리적 유대감 형성이다.

그래서 요즘도 난 배움의 도전을 당당하게 맞기 위한 ‘공부’를 한다. 단단한 이야기보따리가 있는 인터뷰이와의 만남을 앞두면 고시생이라도 된 듯 밤을 새울 때도 있다. 다양한 인터뷰를 하다 보면 특종을 하기도 하고 때론 감동과 도전을, 때론 정반대로 실망을 맛보기도 하지만, 그 어떤 경우도 나에게 ‘배움’을 주지 않은 적은 없다.

▼시청자 대신해 질문… 책임감 커▼

누군가를 만나기 전엔 늘 선입견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지만, 인터뷰의 경험이 쌓이면서 선입견을 철저히 버려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다. 상당수 사람들이 나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내 마음을 비우고 백지가 된다. 오늘 이 인터뷰이가 내게 어떤 배움을 줄지, 그리고 그 배움을 시청자와 공유할 수 있는 기쁨이 있을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약력: △1964년생 △연세대 심리학과, 연세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졸업 △1987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 △MBC ‘뉴스데스크’, SBS ‘백야’ 등 진행

백지연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