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시인의 시 ‘이것은 죽음의 목록이 아니다’에는 수달 멧돼지 오소리 너구리로부터 씀바귀 왕고들빼기 이고들빼기 고들빼기에 이르기까지 수백가지 생물의 이름들이 을씨년스럽게 매달려 있다. 시인은 애써 죽음의 목록이 아니라지만 내 눈에는 영락없는 살생부로 보인다. 개발의 명분 아래 동강 유역에서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를 생물들의 목록이다.
나는 오늘 ‘우비크 맹크스 음바바람 쿠페이뇨 와포…’로 시작하는 또 한 편의 시를 읽는다. 이것은 분명 죽음의 목록이다. 이미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린 언어들의 목록이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지난 500년 동안 인류 언어의 절반이 절멸했다고 한다. 언어학자들은 이번 세기가 끝나기 전에 현존하는 언어의 절반이 또 사라질 것이란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90%가 그저 100개 남짓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나머지 10%의 사람들이 무려 6000개가량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사용인구가 10만명 이상인 언어는 기껏해야 600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말은 사용인구로 볼 때 세계 12위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은 이제 세계가 인정한다. 우리에게 ‘제3의 침팬지’ ‘총, 균, 쇠’ 등의 저서로 잘 알려진 석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박사는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합리적인 문자라고 극찬한다. 한국 아이를 둘씩이나 입양해 키운 분이니 약간은 객관적이지 못할 수 있겠지만, 일찍이 ‘대지’의 작가 펄 벅 여사로부터 영국 리즈대의 제프리 샘슨 교수에 이르기까지 한글의 탁월함을 부르짖은 이들은 수없이 많다.
특히 정보화시대를 맞아 컴퓨터에서 한글의 효율성은 한자나 일본어에 비해 무려 일곱 배나 된다는 평가가 나왔다. 세종대왕님과 집현전의 학자들은 500년 전에 이미 컴퓨터 언어로서 적합성까지 고려했던가 보다. 그런데 이런 한글이 요사이 인터넷 공간에서 무차별적으로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 국적은 물론 조상도 없는 후레자식의 언어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옥스퍼드 대학출판부에서 출간된 ‘사라지는 음성들(Vanishing Voices)’이라는 저서에서 인류학자 네틀과 언어학자 로메인은 언어의 소멸이란 생물의 멸종과 그 과정이 매우 흡사하며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주장한다. 생물다양성이 특별히 높은 열대지방에서 다양한 언어들이 발달했고, 생물다양성이 급격히 줄고 있는 지역들에서 언어다양성도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어를 잃는다는 것은 곧 그 언어로 일군 문화를 잃는다는 것이다. 문화란 어차피 변화하는 것이지만 내 문화가 꿋꿋해야 남의 문화와 만났을 때 넘어지지 않고 포용할 수 있다. 얼마 전부터 뜻있는 학자들을 주축으로 ‘우리말로 학문하기’ 운동이 일고 있다. 지식수입의 시대를 넘어 지식창출의 시대를 열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란 점에서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생물학자인 나는 두 가지 지극히 간단한 제안을 하려 한다. 이제는 우리 시대에 가장 보편적인 용어가 돼버린 영어의 ‘genome’과 ‘DNA’의 우리말 표현에 관한 제안이다. 전자는 독일어도 아닌데 무슨 까닭인지 ‘게놈’이란 국적불명의 발음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됐을 때 어느 학자가 제안한 ‘유전체(유전자+염색체)’라는 더할 수 없이 훌륭한 말이 있는데도 말이다. 또한 ‘DNA’를 우리 자판에서 영어로 미처 바꾸지 못한 채 치면 ‘움’이라는 말이 뜬다. 움은 ‘어린 싹’이란 뜻의 우리말이다. 나도 우연히 실수로 발견한 것이지만 DNA의 기능을 표현하는 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더 늦기 전에 이 멋진 우리말들로 바꿔 쓰면 좋겠다.
오늘은 제77회 ‘가갸날’이다. 한글은 다행히 인구 규모 덕분에 아직 세계 굴지의 언어로 군림하고 있지만 일본어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고립어’로서 본질적인 취약성을 안고 있다. 잘 보호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다. 어쩌다 이젠 공휴일의 반열에서도 밀려난 한글날에 다시금 우리말의 소중함을 되새겨본다.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