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은 30년 만에 부활된 ‘약의 날’이다. 약의 날은 1957년 제정돼 16년간 지켜지다가 1973년 군사정권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때마침 노무현 정부가 생명공학기술(BT)을 차세대 국가 성장동력 10대 산업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는 등 제약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 부활된 약의 날의 의미는 더욱 새롭다. 올해 약의 날에는 ‘좋은 약은 새로운 희망’이라는 슬로건 아래 10일부터 사흘간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약은 생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희망이다. 특히 좋은 약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제약산업은 의료 측면뿐 아니라 국가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기도 하다. 부족한 부존자원에 비해 두뇌인력이 풍부한 우리 실정에서 다른 산업보다 부가가치가 월등한 제약산업은 선진국으로 들어서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스웨덴이나 스위스, 그리고 일본 등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토대가 된 것이 바로 제약산업이다. 스웨덴 아스트라제네카사는 1988년 개발한 위궤양 치료제 ‘로섹(Losec)’이 제품화된 지 불과 2년 만인 2000년에 단일품목으로 181억달러의 매출을 올려 세계 4위의 제약기업으로 우뚝 섰다. 스위스 역시 의약산업에 일찍부터 눈을 돌려 오늘날 전체 공산품 수출 규모의 12%가량을 의약품이 차지할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이 가운데 노바티스가 개발한 세계적 신약 ‘글리벡’(백혈병 치료제)이 톡톡히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범정부 차원에서 제약산업을 지원하고 있는 일본은 미국보다 훨씬 큰 규모로 국가연구기관과 제약회사들의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등 산업적 응용에서 미국을 압도하기 위한 전략을 펴고 있다.
우리가 특히 눈여겨봐야 할 점은 제약산업이 21세기 BT시대의 핵심 산업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제약산업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시대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BT를 비롯해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을 망라한 신기술 융합 등 산업경제적 측면에서도 무한한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바이오 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BT분야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세계 BT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는 미국은 2002년에 연간 정부예산의 25%인 209억달러를 BT에 투자했다. 지난해 유럽은 12억유로를 바이오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일본 역시 미국과 유럽을 따라잡기 위해 지난해 유전자 연구에만 802억엔을 쏟아 부었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신약개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건강 보건과학 분야에 우수한 연구 인력이 많고, 제약기반 기술도 국제적 수준이다. 특히 퀴놀론계 항생제, 항우울증제, 위궤양치료제 등의 개발과 기술 수출을 통해 신약개발 인프라를 완전히 구축하게 됐다. LG생명과학의 호흡기 감염증 치료제 ‘팩티브’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약 승인을 받는 쾌거를 이룬 것이 그 실례다.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10번째 신약개발국으로 발돋움했다. 부활된 ‘약의 날’이 한국 제약산업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하는 장이 되길 기대해 본다.
김종국 서울대 교수·약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