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사진) ‘스캔들’ ‘천년호’ ‘낭만자객’ 등 가을 극장가에 때 아닌 사극이 잇따라 라인업 되고 있다. 여기에 100% 사극은 아니지만, 조선시대가 영화 일부의 배경으로 설정된 ‘은장도’까지 더해지면 올 가을 영화가의 키워드는 ‘역사물’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근 제작된 사극들은 한결같이 ‘역사물의 탈을 뒤집어쓴 울트라 현대물’이며 대개는 과거를 배경으로 한 코믹물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코미디물의 소재 고갈을 시대적 배경의 전환을 통해 극복하려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황산벌’과 ‘낭만자객’.
‘아쌀하게 거시기해불겠습니다!’라는 광고카피가 말해주듯 ‘황산벌’은 백제와 신라, 고구려, 당나라, 일본 등 동북아 5개국 사이의 오랜 갈등의 종지부를 찍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된 황산벌 전투를 소재로 하고 있으나, 사실상 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의 걸쭉한 육자문두 대결이라 할 수 있다. ‘개그콘서트’의 ‘생활사투리’ 코너로 치면 “오늘은 전라도와 경상도 말 중 어느 쪽이 더 심한 욕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까요?”다. 박중훈이 ‘계백’ 역을 맡았고, 정진영이 ‘김유신’을 연기한다. ‘낭만자객’ 역시 김민종이 완전히 망가진 ‘자객’으로 출연해 슬랩스틱 연기를 보여주는 코믹물이고, ‘은장도’ 또한 조선시대 대를 이어 은장도로 정조를 지켜온 가문의 자손인 신애가 자유분방한 시대에 은장도로 뭇 남자들로부터 순결을 지키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코믹물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스캔들’도 섹스 스캔들을 극단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 시대를 과거로 옮겨간 영화다. 그런 만큼 이런 영화들에서 역사적 맥락을 읽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처럼 카메라가 과거로 옮겨간 근본적인 이유는 날로 수지가 악화돼가는 한국영화 제작에서 그나마 ‘본전 흥행’을 보장하는 장르가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관객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영화의 다양성이란 면에서 한국영화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관객은 코미디물을 보며 웃지만, 감독들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김민경 주간동아 기자 hold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