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권장’이란 낱말 속에 들어간 가치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책의 가치를 교육적인 목적으로만 좁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내 독서 이력의 목록에는 쓰임새는 별로라도 에둘러 가는 과정 혹은 의미에 닿기 위해 더듬거렸던 과정 자체가 소중한 책들이 있었다.
반면교사의 역할을 했던 책도 있었고, 그저 즐거워서 키득거리며 손에 잡았던 책들이 책 읽는 광장으로 이끌었던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필독도서처럼 ‘진액만 골라서 주겠다’는 태도를 경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만나 책을 권하는 일은 즐겁다. 의견이 다르면 다른 대로 튕겨 나오는 생각에 눈이 번쩍 뜨인다. 책을 사이에 놓고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어느 새 딱딱하게 굳어 있는 내 머리와 가슴을 말랑하게 만든다. 내가 권해 준 책을 골똘하게 읽는 아이들, 궁리하는 눈빛으로 책을 반납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소통의 기쁨을 느낀다.
그 소통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오늘의 책은 아이들의 질문을 엮은 책 ‘아빠, 찰리가 그러는데요’이다.
이 책은 독일 라디오방송에서 절찬리에 방송됐던 극을 책으로 옮긴 것이다. 책은 아빠에게 초등학생 아들이 묻는 질문과 그 대답으로 이어지는데, 일상에서 시작해 계층간의 격차, 이중성, 무사안일주의와 같은 사회 문제까지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아들은 이 생각을 친구인 찰리와 찰리 아빠, 찰리 누나에게서 전해 듣는다. 그래서 늘 질문은 “아빠, 찰리가 그러는데요∼”로 시작된다. 때론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정공법으로 파고드는 문제 앞에서 아빠는 도망가거나 윽박지르기 일쑤다.
‘중독이 뭐예요’ 편을 보자. 아들은 찰리 아빠가 그랬다면서 “우리들은 다들 뭔가에 중독되고 있다”고 말을 한다. 매사 날카롭고 공정한 잣대를 가진 찰리 아빠를 현실감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아빠는, 마약중독이려니 생각하며 대화를 시작한다. 그러나 중독의 요체는 ‘질투심’이며, 진짜 심각하게 중독된 사람은 때로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텔레비전 드라마 ‘형사 콜롬보’의 앞부분을 놓쳤다고 아쉬워하는 아빠와 텔레비전의 관계를 우회적으로 지적함으로써 산뜻하게 웃게 만드는 것. 이외에도 ‘우리 편 다른 편’ ‘비겁함의 정의’ ‘전문가의 권위’ ‘우울한 주제’ ‘허락된 놀이’ 등에서 여전히 아빠는 아이에게 밀린다. 아이는 순수하고, 부모 되기는 어렵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구상한 수업은 이렇다. 책의 독후감을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부모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놓고 오가는 가상 대화록! 독일 부모와 자식 못지않게 우리 가정에도 답변에 군색한 부모들이 많으리라. 찰리네 가정을 빌려서 아이와 어른이 사회 문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이 책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고 이야기하기에 좋다. 중학교 1학년생 이상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서미선 서울 구룡중 국어교사·‘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 모임’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