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작가’로 불리는 한창훈은 10대를 위해 쓴 ‘열여섯의 섬’에서 먼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소녀의 마음을 잔잔한 필체로 그려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열여섯의 섬/한창훈 지음/184쪽 7000원 사계절
‘인어공주’와 ‘미녀와 야수’의 공통점은?
디즈니사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옛이야기라는 것? 일단 맞는 말이다.
얘기가 나왔으니 만화영화를 떠올려 보자. 두 주인공의 공통점은? 예쁘다는 것? 그것 말고 성격은? 어디론가 멀리 가고 싶어 한다는 것? 정답입니다!
왜 그들은 멀리 가고 싶어 할까? 모두가 떠받들어주는 공주와 미인인데? 그러나 멋진 바다도, 아름다운 마을도, 항상 그곳에서만 지낸다면 결국 자기를 가두는 벽이 되기 때문일까?
‘열여섯의 섬’은 사방이 바다로 막힌 외로운 섬을 배경으로 열여섯 살 소녀의 꿈과 고독을 섬세하게 그려낸 성장소설. 이 소설의 주인공 ‘서이’를 보자. 첫 장면은 섬에 사는 서이가 생선을 손질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 일이 끝나면 풀밭에서 염소를 끌고 와야 하고, 밥 안치고, 빨래도 해야 한다. 물론 공부도 해야 한다.
답답하겠구나…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서이의 발을 묶어둔 진짜 족쇄는 아빠다. 다리를 부상해 일을 못하게 된 데다 엄마마저 두 언니를 데리고 뭍으로 나가 버린 뒤 술로 소일하는 아빠. 친구 집에서 조금만 늦게 들어와도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왜, 아빠는…?
둘러보면 푸른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청바지 광고처럼, ‘뭐든지 부딪쳐 총알처럼 구멍을 내며 달려가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터질 것 같은 폭탄을 안고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들’ 어떻게 할 것인가.
서이에게 위안이 없지는 않다. 어렸을 적 큰이모가 말씀하셨다. 착한 아이는 바다에서 황금배가 나타나서 데리러 온대. 방문을 열자 황금배가 와 있다. 선원들이 인사를 한다. 어서 오십시오. 영광입니다. 뭍에 내려 도시의 큰 회사를 찾아간다. 검은 승용차에서 내린 귀부인이 서이를 보고 깜짝 놀란다. “서이야.” “난 엄마가 잘 있는지 확인한 걸로 충분해요.”
공상의 세계에서 깨어나면 황금배도 엄마도 없다.
어느 날 이 마을에 닿은 바이올린 켜는 여자. 슬픔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를 것 같은 선율 속으로 서이는 빠져든다. 여자는 아픈 사연 때문에 도망치듯 바이올린을 들고 외국으로 떠났다는 것, 귀국하자마자 공항에서 가장 외진 땅을 찾아 섬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자가 나타난 뒤 아빠와 서이의 팽팽한 긴장관계는 점차 위태로운 충돌로 치닫는데….
그 나이에 도망치고 싶은 사람이 서이뿐일까. 집으로 학교로 학원으로,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은 청소년이 어디 한둘일까. 가뜩이나 뻥 터져 버릴 듯한 꿈을 꼭꼭 누르고 사는 푸른 시절, 서이의 답답함이 책 속에만 있는 걸까.
가만, 서이가 어떻게 했나 보자. 서이는 아빠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빠는 먼 곳을 더듬는 서이의 눈에서, 자기를 훌쩍 떠난 엄마의 눈빛을 읽고 불안해했었나 보다. 이제 서이도 아빠를 조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이제 아빠의 주정을 그냥 받아주고만 있지는 않을 거다.
아픔을 통해 훌쩍 커 버린 서이가 앞으로 어떤 해답을 찾아 나갈지는 미지수다. 그 답은 모두 함께 생각해 보는 거다. 서로 사정은 다르지만, 그러다 보면 우리 자신을 감싸는 답답함에 대해서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소설가인 저자는 ‘홍합’ ‘바다도 가끔은 섬의 그림자를 들여다본다’ 등 주로 섬을 다룬 소설을 써 왔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