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해주는 도구의 발전은 과학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17세기의 망원경과 현미경이 그랬다. 1회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뢴트겐은 X선을 발견한 지 며칠 안돼 자기 아내 손뼈의 X선 사진을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1986년 노벨 물리학상이 주어진 전자현미경과 주사터널현미경은 세포와 원자의 세계를 보게 해주었다.
▼개발팀에 올해 노벨의학상▼
올해 노벨 의학상은 X선과는 다른 각도에서 신체 내부를 보게 하는 자기공명영상(MRI·Magnetic Resonance Imaging)촬영 장치를 개발한 폴 로터버 박사와 피터 맨스필드 박사에게 수여됐다. 로터버 박사가 MRI의 원리를 처음 발표한 것은 1973년이었는데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매년 6000만장 이상의 MRI를 찍는다고 한다.
로터버 박사는 현재 미국 일리노이대의 화학, 생물리학, 계산생물학, 그리고 생물공학 교수로 되어 있다. 핵자기공명(NMR·Nuclear Magnetic Resonance)이라는 물리적인 원리를 화학적인 시스템에 도입해 의공학적 응용에 획기적인 성공을 거둔 로터버 박사에게 걸맞은 타이틀이다.
NMR의 발견으로 195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하버드대 퍼셀 교수의 수상 강연에는 에탄올(CH₃CH₂OH)의 구조와 NMR 신호의 그림이 등장한다. 모든 술의 주요 성분인 에탄올에는 세 가지 환경이 다른 수소(H)가 있다. 위의 구조식 맨 앞의 탄소(C)와 결합한 세 개의 수소, 다음 탄소와 결합한 두 개의 수소, 그리고 산소(O)와 결합한 한 개의 수소가 그것들이다.
이들 수소의 원자핵은 양성자(陽性子)라 불리는 아주 작은 입자(10-¹5m, 수소 원자 지름의 10만분의 1 정도)인데, 양성자는 +1의 양전하(陽電荷)를 가지고 지구가 자전하듯 회전을 하기 때문에 미니 자석 같은 성질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에탄올에는 양성자라는 미니 자석이 세 개, 두 개, 한 개 순서로 배열되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자석은 자기장을 형성하여 같은 극끼리는 밀고 다른 극끼리는 당기는 식으로 서로 힘을 미친다. 에탄올의 경우 모든 수소는 다른 수소들이 만들어내는 자기장을 감지하게 된다. 결국 세 가지 환경이 다른 수소가 감지하는 자기장은 약간씩 다르게 되고, 이 미세한 자기장의 차이를 검출하면 각각 수소의 환경을 조사할 수 있게 된다.
로터버 박사는 NMR의 적용 범위를 분자 크기에서 cm 단위로 확장해 인체의 물(H₂O)에 들어 있는 수소를 조사하면 인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체는 부위와 조직에 따라 물의 분포가 약간씩 다르다. 예컨대 근육과 뼈는 물의 함량이 다르다. 따라서 뇌, 디스크 부위 등의 물을 조사하면 신체 내부를 들여다보며 진단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에탄올의 경우에는 한 분자 내에서 자기장이 다른 수소를 조사했지만, 이제는 어떤 신체 부위 내에서 자기장이 다른 수소를 조사해야 한다. 에탄올에서 자기장의 차이는 에탄올 분자 자체에서 오지만, 신체 부위 내에서는 그런 자기장 차이가 없다. 로터버 박사는 커다란 자석의 강한 자기장 안에 위치에 따라 자기장이 약간씩 달라지도록 만드는 장치를 집어넣고, 다시 그 안에 신체 부위를 넣고 나서 물의 수소를 조사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맨스필드 박사는 이렇게 얻어진 복잡한 신호를 수학적으로 처리해 영상을 빠르게 얻어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몸속 물의 분포 차이서 착안▼
19세기 말에는 합성염료가 개발되면서 세포 표면을 염색해서 세포를 볼 수 있게 됐다. 덕분에 결핵균 등 많은 병균이 발견돼 그 예방과 치료에 크게 기여했다. 20세기 후반에 DNA 구조 발견에 이어 생명공학의 시대가 열린 것도 세포 내 유전정보의 저장소인 염색체가 쉽게 염색이 된다는 사실이 출발점이었다. 요즘은 암 부위는 물의 수소의 특성이 정상세포와 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MRI를 통해 암 조직을 볼 수 있게 됐다. 볼 수 있게 되면 진단과 진료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역시 보는 것은 중요하다.
김희준 서울대교수·화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