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숟가락 즙을 더 뜨려는데 고하나가 맥없이 고개를 젓고는 몸을 비틀면서 흐느꼈다. 나미코는 모포 밖으로 삐져나온 야윈 무릎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모포를 덮어주고는, 고하나에게서 배운 노래를 조그만 소리로 흥얼거렸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버린 쪽박인가요
꼬부랑 할머니가 물 길러 갈 때
치마끈에 달랑달랑 채워줬으면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신다 버린 신짝인가요
우리 아기 아장아장 걸음 배울 때
한 짝 발에 딸각딸각 신겨줬으면
고하나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목소리를 불러들이듯 입술을 움직였다. 나미코는 고개를 숙이고 귀를 갖다댔다. 아이고, 용학아, 많이 컸구나…걸음마도 다 하고…그런데 얼굴은 하나도 안 변했어…이렇게 컸어도 엄마는 다 알아보지…우리 용학이 눈은 엄마 닮았고, 코하고 입은 아버지 닮았고, 얼굴 윤곽은…엄마 닮았지…용학아, 아이고 우리 용학아, 정말 많이 컸어…가만히 있지 말고 엄마라고 좀 불러봐…용학…고하나는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고 아이고 아야, 라면서 이불 속에서 발을 버둥거렸다.
나미코는 경대 위에 있는 아편을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에 묻혀 부슬부슬 입안에 떨어뜨렸다. 잠시 후, 힘을 잔뜩 주고 있던 얼굴이 좍 풀리면서 고하나는 눈을 감았다. 후우…후우…아기 미음을 후후 불어 식힐 때처럼…후우…후우우우…스으으으, 크게 숨을 들이쉬는 그때 돌풍이 불면서 나무문이 덜커덩 열리고 모포가 바람에 휘날렸다. 화들짝 놀라 눈길을 돌리자, 고하나의 얼굴이 이상했다. 가슴에 귀를 갖다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손거울을 입에 갖다댔다. 김이 서리지 않았다.
“아이고, 이런 데서, 이런 데서 죽다니 안 돼…이럴 수는 없어…아이고, 아이고야….”
나미코는 울면서 분노를 느꼈다. 낙원에 끌려온 지 1년3개월, 하루하루를 보내기가 너무 힘들어 분노를 느낄 틈도 없었다. 분노는 몹시 차갑고, 아주 무거운 것이었다. 분노가 가슴을 찢고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