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비서실의 내밀하면서도 역동적인 모습을 담은 미국 NBC TV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 신념이 투철하면서도 인간적 면모를 가진 대통령 바틀렛(마틴 쉰·앞줄 가운데)과 그를 보좌하는 백악관 비서진의 프로페셔널리즘이 그려진다. 사진제공 온미디어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비서실의 내면을 그린 ‘가상’의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The West Wing)’을 즐겨본다는 사실이 최근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웨스트 윙은 대통령 비서진이 일하는 백악관의 서쪽 부분을 가리킨다.
국내 케이블 유료영화채널인 캐치온이 방영(월화 오후 9·15) 중인 이 드라마는 2000∼2003년 에미상 TV드라마 시리즈 부문 최우수상을 4년 연속 수상하면서 미국 NBC TV의 간판으로 자리 잡았다.
드라마 ‘웨스트 윙’의 바틀렛 대통령(마틴 쉰)은 소탈하고 토론을 좋아하는 등 노 대통령과 흡사한 일면이 있다. 그러나 ‘웨스트 윙’의 비서진은 얼음처럼 냉정한 판단력과 고도의 순발력, 프로페셔널리즘으로 대통령이 국정을 주도할 수 있도록 보좌한다. 비록 가상이지만, 이들의 위기관리 능력은 청와대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프로페셔널리즘
대통령이 언론에 노출될 때 마이크를 손에 들 것인지 옷에 달 것인지, 어떤 농담을 할 것인지도 논의한다. 기자의 질문에 대비한 모의 질의응답도 치밀하다.
“미국인 40%가 의료 보험이 없으며 그 중 대부분은 아동입니다. 해결책은 없고 계속 겉핥기만 할 것입니까”라고 한 비서가 묻자 대통령은 “이 행정부는 겉핥기만 하진 않습니다”라고 답변을 시작한다. 이 때 한 비서가 조언한다. “답변할 때 질문한 문장을 반복하지 마세요. 변명처럼 들립니다. 해결책이 없다면 문제를 인정하는 편이 좋습니다.”
이후 대통령의 답변은 수정된다. “많은 국민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동의하며 그게 아동이어서 더욱 참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린 해결할 것입니다.”
○실력 위주 인사와 리더의 여유
대통령은 야당인 공화당의 당원인 엔슬리 변호사를 백악관 법률고문으로 초빙한다.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바틀렛 정부가 이끄는 민주당은 독선적이고 민주주의를 모른다”고 논리 정연하게 비판한 엔슬리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비서실장은 그가 공화당원이라며 고용에 반대한다. 그에게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 국민의 절반이 공화당 쪽이야. 국민으로서의 의무감을 말하는 친구이니 고용하게.”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비용을 부담하고 바틀렛 대통령을 초청한 만찬. 대통령이 매몰찬 질문으로 악명 높은 이들을 염두에 두고 ‘고안’한 농담에는 리더의 여유가 엿보인다. “오늘 밤 여러분의 언변에 사정없이 당하겠지만 상관없습니다. 다만 저 보고 저녁을 쏘란 말만은 하지 마세요.”
○냉철한 판단과 직언
대통령은 발작이 일어날 수도 있는 희귀질병 진단을 받고 이를 비서진에게조차 숨긴다. 이를 뒤늦게 안 공보수석 토비는 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한다.
“핵무기가 장전될 지도 모를 상황에서 대통령이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니! 그럼에도 각하는 최고사령관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비서진은 대통령 앞에서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재선 출마를 선언하는 연설문 준비가 잘 되지 않자 한 비서가 보좌관들에게 소리친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여기에다 가두고 불 질러 버리겠소.” 그러나 대통령은 비서들보다 더 냉철할 때도 있다. 새 법안을 야당이 거부하려 하자 한 보좌관이 “의회가 법안을 무효화 시킨다면 저희가 약해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대통령은 “그렇게 되면 우리가 (약해 보이는 게 아니라) 약한 걸세”라고 말한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