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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저편 439…낙원에서(17)

입력 | 2003-10-12 18:58:00


분을 지우고, 연지를 지우고…나미코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과 마주하였다. 낙원에 끌려왔을 때는 단발머리였던 머리칼이 등 한가운데까지 자랐다, 봄이면 허리까지 닿을 것이다, 버들가지에 새 움이 틀 무렵에는…나미코는 빗으로 머리를 빗어 내리고 꼭꼭 땋았다. 머리를 다 땋고는 벽에 걸려 있는 치마저고리를 걸쳤다.

2번 방문에 걸린 ‘휴가’, ‘고하나’란 두 개의 푯말은 뒤집어져 있었다. 문을 열자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고 이부자리에 누워 있는 고하나의 시신 주위에 치마저고리 차림의 위안부들이 빙 둘러앉아 있었다.

경대 위에는 먹다 남은 귤 통조림과 여자들이 가져온 쇠고기 통조림, 콩과자와 사과가 놓여 있고, 고하나의 찻잔에는 생강나무가 꽂혀 있었다.

촛불이 흔들리고 향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여자들이 한 명씩 절을 하고 있는데 나무문이 덜컥 열리면서 아버지가 들어왔다.

“얼른 안 자. 내일 근무에 지장 있잖아.”

“오늘밤은 죽은 사람 곁을 지켜야지요.” 나미코는 분노에 잠기는 자기 목소리를 느꼈다.

“여보 주제에 무슨 건방진 소리야.”

“후미코 언니 때는 장작하고 종유가 모자라서 시신을 끝까지 태울 수가 없었습니다. 부탁이에요. 고하나 언니는 화장터에서 태워 주세요. 가토 중사가 전사하거나 병사한 군인은 매월 1일에 고별식을 거행한 후, 한커우(漢口)로 내려가는 기선에 태워 고향으로 돌려보낸다고 그러더군요. 그러니까 유골만이라도 고향 안성에 보내 주세요. 두 살난 아들이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어떻게든, 이렇게 부탁 드릴게요.” 나미코는 순수한 분노만으로 목소리를 빚어냈다.

아버지는 여느 때는 별 말이 없는 나미코가 거침없이 토해 내는 말을 듣고는 당황하여 앞니 빠진 잇몸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고는 코로 연기를 뿜어냈다.

“관 하나에 시신을 두 구씩 넣어 태웠는데, 장작하고 종유가 부족해서 관에도 못 넣고 머리하고 다리 엇갈리게 쌓아서 아궁이에다 태우고 있다. 병사하고 조선 계집을 같이 태울 수는 없고, 또 이 여자 하나 태우려고 괜한 장작을 축낼 수는 없는 거니까. 그냥 묻어버려도 되는 일이고.”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