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에 대해 전직 대통령들은 어떤 입장을 보이는지 알아보았다. 이들 전직 대통령은 대체로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고, 일부는 ‘독재자가 쓰는 수법’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이날 노 대통령의 국회 시정 연설을 TV 생중계로 지켜본 뒤 특별한 언급 없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고 김한정(金漢正) 비서관이 전했다.
김 비서관은 “재신임 문제로 국가가 혼란스럽고 국민의 걱정이 높아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계신 것 같다. 말 많은 세상에서 아무 말씀도 없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동교동계 한 의원도 “김 전 대통령이 정치인과의 접촉을 사양하고 있어 어떤 심경인지 알 수 없으나, 국정 혼란이 조속히 수습되길 바라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독재자’라는 표현을 써가며 노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6박7일간의 일본 방문을 마치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재신임 국민투표는 헌법에도 없는 것으로 과거 독재자들이 쓰는 방식이다”라고 비난했다고 대변인 격인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 의원이 전했다.
87년 국민투표로 통과된 직선제로 대통령에 당선됐던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도 “재신임을 묻겠다니 그 기간에 국정 혼란을 어떻게 감당할는지 걱정이 앞선다”고 우려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재임시절 중간평가 공약을 되살리며 “국민투표 관리비용만 1000억원 정도며 기타 비용을 합치면 훨씬 많은 돈이 들 것”이라며 “일단 나라를 살리는 것이 급하다. 차라리 그 돈이 있으면 수재민들을 돕는 데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반면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은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별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 측근은 “(집이 가압류당하는 등) 개인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을 접하고 더욱 안타까운 반응을 때때로 보이셨다”고 전했다.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도 TV로 시정연설을 지켜본 뒤 “배경을 알아보라”고 언급했을 뿐 별 반응이 없었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한 측근은 “(노 대통령 발언에) 정보도 없고 정부에서 알려주지도 않는데 우리가 지금 정치를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